학생들이 ‘적당히’라는 말을 한자의 뜻과는 엉뚱하게 쓰는 것에 대하여 어느 고교교사가 ‘맞을 적, 마땅할 당’이라며 언성을 높여 설명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이기적으로 현실에 맞게’의 뜻으로 정부 고위층 인사들도 자주 쓰고 있으며 신판 국어사전에도 이중의 뜻이 있는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지구의 반대쪽’이란 용어가 기준도 없이 반대쪽이 있을 수 없다 하여 비논리적이라 했는데 이것은 ‘지구상에서 밤과 낮 혹은 계절이 우리나라와는 반대인 지역’을 축약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모님’이 ‘어째서 선생의 부인일 수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母에는 ‘어머니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여자 어른’이란 뜻도 있어서 친척 관계의 이모(姨母), 고모(姑母), 숙모(叔母), 장모(丈母) 이외에도 유모(乳母), 식모(食母), 침모(針母)도 있으니 ‘사모님은 선생과 어머니 역할을 겸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유아원의 ‘보모(保姆)’에는 姆(여자 스승 모)가 쓰인다(옛날 왕세자에 보모가 있었다 함).
‘주택 매매(賣買)’광고에서 광고주는 ‘주택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나는 팔 테니 아무나 사시오’라는 것이 될 수 있다.
‘녹색 신호등’이지 어째서 ‘푸른 신호등’이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푸른 산, 군인의 푸른 제복, 새싹이 파릇파릇’과 연계하면 이해가 된다.
경상도(다른 지역까지는 모르겠으나)에서는 ‘쌀(곡식) 사러 간다’가 ‘쌀 팔러 간다’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다. 곡식 이외의 물건을 사러 가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의 전철역 안내방송에 있었던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시오’에 대하여 ‘위험 지역으로 가란 말이냐’는 반박이 있었으나 이것은 (좁게 그어놓은)안전선을 넘어오지 말라는 뜻이었지 위험 지역은 선로인데 ‘물러나라’는 것이 결코 ‘선로에 들어가라’는 뜻은 될 수 없다.
말을 논리적으로만 하기는 어려워서 이미 정착된 용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의미에 혼선을 일으키지 않을 용어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에 정부, 언론, 교육계가 앞장서야 될 것이다. 정부 발표의 ‘적당히 끝내지 않겠다’에서 ‘적당히’ 대신 쓸 수 있는 말에는 ‘부적절하게’, ‘대강’,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쩍’, ‘미완으로’ 등등 수없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