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3국은 한자를 쓰니까 상대국의 말을 몰라도 필담(筆談)을 통하여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물이 있는 밭’이라는 뜻의 畓(논 답), ‘乙(새 을)자를 ’ㄹ'자로 활용한 乭( 사람이름 돌) 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글자도 있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각 나라마다 뜻이 변한 글자가 있어서, 예를 들면 ‘國(나라 국)’에는 ‘고향’이라는 뜻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뜻으로는 쓰지 않으나 일본에서는 ‘國’을 ‘지방(地方)’의 뜻으로도 쓴다고 한다. 그래도 한자를 알면 중국인과 일본인 앞에서 ‘벙어리 냉가슴’은 면할 수 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온 일본인이 ‘警察廳(경찰청)’이라고 쓴 쪽지를 한 경찰관에게 보이며 길 안내를 부탁했는데 그 경찰관이 그것을 읽지 못했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다. 그것을 읽을 수는 있어도 길 안내 방법을 몰랐고 돌발 사태에 임기응변(臨機應變) 능력이 부족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이 중국의 일부도 지배하고 있던 일제시대에 중국어를 모르던 어느 일본인은 그곳에서 필담을 나누었던 중국 소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소년이 ‘何國(어느 나라 (사람이냐))?’ 고 물어서 ‘大日本帝國’(대일본제국)이라고 썼더니 그 소년은 ‘日本小國大字不當’(일본 소국 대자 부당)이라고 썼는데 그 글에 대응할 적당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한자는 3개 국어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효용가치가 제일 높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교육이 등한시된다는 것은 기현상(奇現象)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초등학교에서 자습을 시키는 정도의 한자 학습으로는 미흡하고 영어만큼 중시해야 될 것이다. 사교육 과열이 두려워서 한자를 초등학교의 정규 과목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말한 교육 관계자들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영어도 도입하지 말았어야 하고 당장 폐지해야 되지 않겠는가?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스스로 학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지만 한자는 가능하며 국어의 일부로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 한자를 사교육에 의존해야만 배울 수 있는 학생이라면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사교육비는 낭비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대상의 영어 말하기 대회 참가자가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은 학교 교육과정 이상의 것이어서 수상자들은 사교육에 의존한 덕택이니 교육 관계자가 그 수상자들을 칭찬하기에는 어색한 면이 있다.
한자 교육에 배정할 시간이 없다면 실과(實科) 과목에서 음식 만들기나 바느질 같은 것은 가정교육에 맡기고 그 시간만이라도 한자 교육에 할애하고 자습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10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나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과목이 있을지라도 한자 공부는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