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일제의 아시아 침략 뒤엔 민중의 동조 있었다 [중앙일보]
일본
관련링크
[Section] 행복한책읽기

　1932년 상해사변 당시 ‘육탄 3용사’라는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탄생했다. 폭탄을 몸에 안고 적진에 돌입하여 돌격로를 뚫은 3명의 병사 이야기가 신문보도를 통해 전해지자 일본인들은 열광했고, 불과 한 달 만에 무려 7편의 ‘자폭공격’ 영화가 개봉되어 만원을 이뤘다. 당시 이 이야기를 처음 보도했던 아사히 신문이 최근(2007.6.13일자)들어 참회의 기사를 실었다. 단순한 실수로 인한 사고를 기자들이 미담으로 날조해서 전쟁 동원을 선동했다는 자기고백이었다.

　일본은　1930년부터 중국과 미·영을 상대로 15년간 전쟁을 했다. 그런데 이 전쟁은 과연 천황과 일부 군부 강경파가 주도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당초 병사의 폭탄 조작 실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던 군부마저 결국 언론과 대중이 앞장 선 군국미담 만들기 대열에 뒤늦게 동참했던 경과는 ‘아래로부터의 군국주의’도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민중의 전쟁책임을 진지하게 묻는 책이다. 패색이 짙은 전투상황에서 왜 일본군은 투항하지 않고 죽음의 길을 택했는가. 포로가 된 뒤에도 왜 대다수 일본 군인들이 가명을 썼는가. 당시 포로가 되는 것은 황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그 사실이 고향에 알려지게 되면 가족들이 주민들로부터 가해질 유형·무형의 박해에 시달릴 것을 병사들은 두려워했던 것이다. 지역공동체는 서로의 애국심·충성심을 감시하는 자율 조직이기도 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민중들의 적극적 동의 하에 사회 전반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천황이 신(神)이라고는 어린아이들조차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믿는 ‘척’을 했다” “이렇게 ‘척’한 것이 권력자를 고무시켜 그들의 어리석은 자멸적 판단을 가속시켰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권력자와 민중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작동했다고 분석한다. 대중은 언제든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동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개념의 ‘대중독재론’과 동일한 맥락이다.

　1930년 출생인 저자는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해서 지금까지 130권 이상의 책을 썼고 40여 년간 평단을 이끌어 온 일본의 대표적 영화평론가이다. 그런 그가 왜 본업에서 비켜난 책을 썼는가? 1945년 패전 당시 그는 14세의 소년병이었다. 그것도 비행기로 적함에 돌진하는 자살특공대 훈련조직 요카렌(予科練)소속이었다. 철두철미 군국소년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단서로 삼아 저자는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민중이 어떤 정신구조 속에서 전쟁에 가담했는지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솔직하게 되돌아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기억이 자칫 야스쿠니나 A급, B급 전범에 집중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군국주의의 공기를 국민 모두가 나눠 마시고 들떴던 과거의 기억을 도덕적 수치감과 함께 되새기는 것.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것이야말로 전범에 대해 정치적으로 단죄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저자는 믿는 듯하다. 스스로의, 혹은 공동체의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용기는 진정성을 수반하기 때문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표방하는 그 어떤 정치적 수사보다도 울림이 크다. 그 울림에서 동북아시아 ‘풀뿌리 평화주의’의 가능성을 본다.


윤상인 한양대 교수

사토 다다오

1930년 니이가타 현 출생. 니이가타 공고 졸업. 잡지’영화평론’에 참여하면서 영화평론에 입문. 일본영화학교 교장을 지냈다. 『한국영화의 정신-임권택감독과 그의 시대』와 같은 저서도 냈다. 대표저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세계』 『일본영화사』 『중국영화 100년』등

***PS:위와같이 시대의 흐름과 동시에 인간본연의 마음을 가진 일본 지성인은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