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미친 짓', 취재할 게 많다" 조회 : 0추천 : 0






작성자 이흥열 작성일 2007/06/12 18:34





"부시의 '미친 짓', 취재할 게 많다"
탐사보도의 '살아있는 전설' 허쉬 기자의 부시 비판
황방열(hby) 기자





▲ 세이무어 허쉬기자

ⓒ 오마이뉴스 황방열

"포트베닝, 조지아, 11월 13일-윌리엄 L.캘리 중위(26세)는 공손하고 아직 앳되게 보이는 베트남 참전용사로 별명은 '녹슨 사람'이다. 육군은 1968년 3월에 '핑크빌(Pinkville)'로 알려진 베트콩의 거점을 수색, 섬멸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어도 109명의 베트남 양민을 의도적으로 살해한 사건의 조사를 완료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에 미군이 베트남의 밀라이 마을에서 저지른 양민학살 사건을 폭로한 세이무어 허쉬(Seymour Hersh) 기자의 '109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죄로 기소된 중위'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허쉬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이 기사는 베트남전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미국 언론에게는 탐사저널리즘의 상징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지금은 탐사저널리즘 교과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유명인사지만, 당시 32세의 허쉬는 AP통신을 떠난 프리랜서일 뿐이었다. 장본인인 캘리 중위의 확인을 받았음에도 미국의 국익에 어긋난다는 점 때문에 기사를 받아주는 매체가 없었다. 그러다 베트남전 취재기자들을 위해 1년전에 설립된 '디스패치 뉴스서비스'라는 매체를 통해 기사를 올릴 수 있었다.

지난 4월 나는 한국언론재단이 주최하는 '탐사보도 디플로마 과정'에 지원하면서 "세이무어 허쉬와 같은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소망한다"고 적었다. 급하게 쓴 글이었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든 기자들의 소망일 것이다.

"부시 임기 17개월 남았는데 어떻게 견뎌야 할지..."



▲ 세이무어 허쉬 기자.

ⓒ 오마이뉴스 황방열
지난 8일 오전(미국 시각)에 허쉬를 만났다.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 inc)'가 애리조나주 주도 피닉스의 한 리조트에서 연 협회설립 30주년 기념 컨퍼런스 자리에서였다. 협회는 행사기간 중에 대가가 후배들에게 한 수 전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꽉 차면 895석이라는 강연장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컨퍼런스에 34개국에서 950여명이 왔다고 했으니 대부분 이 자리에 모인 것 같았다.

허쉬는 짧게 강연했고, 질문을 받았다. 그는 달변가다. 질문에는 즉각적으로 답했고, 본인은 안 웃는데 청중은 박장대소한다. 내 짧은 영어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같이 간 영자신문 기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부시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부시의 임기가 17개월이 남았는데, 또 그가 어떤 일을 할지,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때문에 취재할 게 많다"고 했다.

그는 1962년의 '쿠바미사일 위기' 때를 회고하면서, 당시 케네디가 흐루시초프에게 터키에서의 미국 미사일 철수를 제안한 '백도어 딜(이면계약)'을 통해 사태를 해결했는데, 물론 잘한 일이지만 7년 뒤인 1969년에야 이런 내용이 공개됐다고 소개했다. 지금도 얼마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허쉬는 "아직도 펜타곤에서 네오콘이 강하다"면서 "이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전쟁 중에 퇴역한 4성 장군들이 많은데, 원래 전쟁 중에는 그런 일이 없다"면서 "이것만 놓고 봐도 그들 스스로 전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군부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란과 레바논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대해서도 그는 "망상(dillusional)이라는 말 대신 '(whacky라는 속어를 써서) 미친 짓'이라고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최대 관심사는 중동 특히 이란 핵문제다. 많은 시간을 중동 취재에 쓰고 있다는 그는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면서, 미국의 이란침공을 걱정했다.

"좌파냐, 우파냐... 기자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는 2004년에도 이라크 아브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이 저지른 포로학대에 대해서도 특종 보도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타구바 소장이 사건의 전말을 조사한 군 내부의 비밀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터뜨린 것이다. 이미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평가가 끝난 이라크 전쟁의 도덕성은 시궁창에 처박혔다.

미국이 평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총력을 기울인, 두 번의 대표적 전쟁에서 미국의 위선을 발가벗겨낸 것이다.

미국 언론계에서 그는 노엄 촘스키와 비슷한 존재라고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지만, 좌파라는 점과 언론계의 주류를 향한 계속적인 비판 때문에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쉬는 "IRE 같은 단체의 활동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의 주요언론사들이 대기업 소유인 상황에서 진정한 기자정신을 보호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언론사들의 지나친 영리추구와 권력에 대한 감시소홀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기자들의 질문은 적극적이었다. 7명이 마이크에 앞에 줄을 서서 질문을 던졌다. 커피를 들고 나와 마시면서 질문하는 한 기자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질문 한 번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허쉬의 대답을 듣고 다시 질문했다. 어떤 기자는 허쉬와 4차례의 문답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 기자가 허쉬에게 "기자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갖는 게 취재에 편하지 않은가, 당신은 좌파임을 공공연히 드러내는데 그게 취재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허쉬는 "기자가 정치적으로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현실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취재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온갖 문제들이 쌓여 있는데 그걸 취재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누구 입에서 나오는 말이냐에 따라 울림은 다르다. 리영희 선생도 똑같이 말했다. "당신은 한국 진보세력의 사상적 은사로 불린다"는 말에 리영희 선생은 "중요한 건 진보니 보수니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일축했다.

환갑의 기자도 '편집장은 무서워'



▲ 질문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오마이뉴스 황방열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전쟁관련) 취재를 하는 게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들 하는데, 용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진짜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분쟁지역에 있어서 매일매일 죽음과 맞서고 있는 사람들이지, 우리는 그냥 우리 일을 하는 것뿐이다, 기자의 직분을 하고 있을 뿐이다."

1937년생으로 지금도 현장을 뛰고 있는 그는 편집장(에디터)에게 받는 압박감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허쉬는 "내가 기사를 썼을 때 편집장이 더러운 얼굴을 지을까 봐 걱정한다"면서 "지금도 1년에 3번 정도는 그만두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편집장과 자신의 관계를 "생쥐(mice)를 쫓는 쥐(rat)"라고 표현했다. 그가 편집장을 무서워한다는 말에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취재원 관리의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뭐 좀 도움 되는 것을 얻어내려면 보통 2년은 걸린다. 2년 동안 수없이 만나도 결국은 아무 것도 못 얻어내는 때도 많다"는 것이다.

북한핵문제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2·3년 전부터 이 문제에는 손을 놓아서 잘 모른다, 이란핵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답했다.

강연이 끝난 뒤 그에게 명함을 건네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이런 종류의 만남은 때로는 영감과 자극의 계기가 된다. 그와의 만남이 내게도 그런 계기가 되기를….


미국탐사보도 협회(IRE)는




▲ 돈볼리스를 기리는 자료와 그의 사진.


1976년 2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한 기자가 제보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에 설치돼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서 사망했다. 그는 '애리조나 리퍼블릭'신문의 돈 볼리스(Don Bolles)였다.

볼리스는 지역마피아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죽은 뒤 지역의 동료기자들과 언론관련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그가 하던 취재를 이어나갔고 결국, 그를 죽인 범인들까지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1977년에 미국 탐사보도협회가 만들어졌고, 올해 피닉스에서 30주년 컨퍼런스를 가졌다.

전세계 34개국에서 95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CAR(Computer Aided Reporting)보도와 SNA(사회관계망 분석, Social Network Analysis), Mapping 등 미국의 최근 심층보도 경향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범죄·정치자금·의료·복지·테러·불법이민자 등 각각의 문제에 대해 이 같은 컴퓨터 활용보도가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 논의했다.

특히 이번에는 약 40명의 한국기자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언론재단의 탐사보도 디플로마 과정에 있는 기자들과, 이와 별도로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일간지 대상 해외단기연수자들, 그리고 KBS 취재팀이 피닉스에 모였다. 또 미국에 장기연수차 와 있다가 개인적으로 참석한 기자들도 있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한국에서도 3건의 발표가 있었다. MBC의 최승호 CP가 황우석 박사 사건에 대한 'PD수첩'의 취재에 대해 발표했고, KBS 최경영 기자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취재내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