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의식수준이 올라갈수록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지속적으로 성장할거라 생각합니다.

이렇듯이 산업구조가 2차산업에서 3차산업으로 옮겨갈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것이나, 삶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주거공간'이 가지는 디자인의 전달 매개체로서의 중요성이 그동안은 많이 간과되어 왔던것도 사실입니다.

좁은 국토의 넓이와 인구의 대도시 집중현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태생된 주거형태인 아파트, 이제는 아파트를 빼고 주택을 말할 수 없을정도로 대표적인 주거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파트라는 주택상품을 제공하는 관점은 1970년 ~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기능을 충족한다'라는 관점외에 '수려한 디자인을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인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파트디자인에 대한 욕구가 그 기간동안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며 21세기를 맞아 폭발적으로 증가한 입주민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지금에 이르러 건설사 각사별 '디자인 차별화전략' 한두가지 쯤은 내세울 수 밖에 없는 시장상황을 맞이하게 이르렀습니다.

가까운 예로, 아파트 외관 전체에 대해 디자인등록을 마친 대림 이편한세상이나, 단지 주출입구 디자인을 특허상품으로 개발한 롯데캐슬, 옥탑의 디자인을 개발한 동부센트레빌, 입주민의 그레이드에 따른 차별화 디자인을 개발한 쌍용건설, 색채메뉴얼을 개발하고 앙드레김이라는 대중적인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차별화전략을 꾸리고 있는 래미안등 대형 건설사간의 '디자인차별화'에 대한 경쟁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아파트라는 하나의 종합상품의 가치가 디자인 한가지만으로 좌우 될 수는 없겠으나 좋은 디자인의 아파트가 입주민의 자부심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것이 사실이며 이제는 좋은 디자인이 아파트의 분양가 및 사업의 완성도를 좌우할 수 있을정도로 비중이 높아진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각 브랜드가 수주전에서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으로 인식이 되어지는 상황이며, 아파트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위한 광범위한 마케팅전략과 병행하여 실질적인 브랜드의 고부가가치를 입주민에게 가장 손쉽게 가시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어가는 추세입니다.

본인역시 아파트 브랜드의 외관차별화 디자인 현업에 수년간 종사하고 있는 1인으로서, 요즈음의 각 건설사별 브랜드 차별화 전략의 방향이 조금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이 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많은 해외 우수아파트 단지들을 견학하며 국내아파트의 현실과 해외 우수아파트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는 기회를 많이 갖게됩니다.

이러한 실사를 통해 깨닫게 되는것은, 국내 아파트 입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보다 넓고 쾌적한 실내공간을 영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해외 우수아파트의 실내공간이 생각보다 협소하며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주부의 동선을 배려하는데 인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되는 면에서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쾌적한 실내공간을 제공하는 시장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되게도 국내 아파트 단지의 '외관'은 해외 우수아파트단지에 비해 건축 외관디자인의 완성도와 다양성이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입주민이 시기적으로 선호하는 3bay네 4bay네 하는 평면구성을 무비판적으로, 경쟁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차이는 있으나 외관 디자인의 차이는 별반 느낄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 된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건축적 완성도가 뛰어난 아파트 외관디자인은 '좋은 평면계획'을 통해서만 가능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벽면에 화려한 벽화를 장식한다고 해서 아파트 외관디자인의 질이 한단계 상승하는것이 아닌데도 마치 그러한 것이 아파트 외관디자인의 전부인양 선전하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는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조장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공기단축 지상주의'입니다.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도입한 한국건설업체만의 공사방식으로 인한 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아파트의 외관을 다양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큰폭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장상황은 자연스럽게 아파트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로 하여금 창의력의 폭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디자인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게 된것입니다.

21세기에 이르러, 아파트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부터, 이러한 관행에 대한 반성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것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라 하겠으나 각 건설사들이 과연 아파트디자인을 '본질적인 부분에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각 건설사들이 내세우는 차별화전략중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해외건축가 누구누구'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해외건축가에게 주어지는 디자인의 자유도를 똑같은 방식으로 국내 디자이너에게 부여한다고 하면 이러한 척박한 아파트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참여할 우수한 국내건축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해외건축가들이 참여하는 아파트 차별화전략의 위험성중 두번째는 그들이 '국내 아파트사업의 현실'과 '입주민의 진정한 needs'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데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의 건축물이 완결성을 갖기위해서는 설계 및 디자인작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설계자 본인의 짜임새 있는 관리를 통해서 가능한것이 당연하지만, 국내 현실을 모르는 해외건축가들의 경우 대부분 계획설계 단계에만 참여하고 실제 실시설계는 국내 설계사무소가 담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국내 설계사무소가 내실있게 실시설계를 했다고 하더라도 각 건설사별 디자인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따라 최초 디자인의 순수성은 이곳저곳의 짜집기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되어 건축가의 의도와 달리 건축물의 퀄러티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설계자와 건설사간 입장의 간극을 메꿔주고 입주민에게 보다 나은 아파트 디자인을 제공하기 위하여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를 비롯하여, 아파트의 외관차별화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하는 여러 디자인회사가 자리메김을 하고있는 중입니다만 디자이너 역시 공사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것과 별반 다르게 취급하지 않는 건설사들의 왜곡된 시야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기껏 자라난 유망시장을 고스란히 외국의 건축가들에게 내어줄 위기에 처하게 될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을 입주민-고객에게 제공한다는 건설사의 의지가 진정한 것이라면 이는 단순히 '해외 누구누구'라는 유명세와, 디자인 특허상품이라는 이벤트성 보여주기 전략에 의존해서 가능한것이 아니며, 국내 아파트의 외관이 왜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으로 부터 출발하여 건설사와 저희같은 전문 디자인회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과 고객의 needs를 받아들이기 위한 철저한 프로슈머마케팅을 통해야만 가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수성속에서 주어진 제약상황을 개선하고자 수년간 아파트의 외관차별화 디자인에 매진하고 최일선에서 입주민들의 needs를 몸소 느껴본 입장에서 건설업계와 국민들에게 아울러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아파트-주택이라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결코 단편적인 인식으로 접근해서는 쉽게 그 질을 높이기 어려운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