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직 은행원입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써 봅니다.

금융노조의 은행 영업시간 단축 요구를 놓고 말들이 분분합니다.
10일 아침 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선 진행자와 금융노조 관련자가 선진국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설전을 벌이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구사항의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않을테니 쓸데없는 일로 열받지 마시라는 겁니다. 왜냐구요?
은행의 영업시간이 선진금융국의 사례를 쫒아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직원들의 업무량과다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더욱 아니고 오로지 고객들의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모르는 은행원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직원복지를 위해 심야상영을 하지 않는 극장, 휴일에 쉬는 백화점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철부지 은행원이 어디 있을라구요
선진국의 사례를 들지않아도 서울시의 각 구청 안에 있는 우리은행은 일반 영업점보다 30분 당긴 오전 9시부터 1시간 늦춘 오후 6시까지, 공항에 있는 은행들은 24시간 내내 영업합니다. 고객들에게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은 굳이 설명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동대문시장안에 지점을 개설한다면 오후 7시부터 오전 5시까지 영업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산별노조라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단체교섭을 통하여 전 은행이 똑같이 시행하면 손해보는 은행은 없을거라는 절묘한 셈법같은데요, 어디 외국계은행은 손놓고 있답니까?
아, 아닙니다. 사실 이런 원론적 이야기도 필요없습니다.
과연 영업시간 단축 요구가 단체교섭사항에 해당하기나 하는 것인지요? 근로시간과 영업시간은 별개의 사항이 아닌가요? 영업시간은 업종의 특성에 따라 타겟고객의 니즈에 의해 정해지는겁니다. 근로자가 정해야할 사항은 아닌게지요. 단체교섭사항에 해당되는 일도 아니라면 굳이 정당성 여부를 따질 가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저를 포함해서 은행원이라면 어느 누구도 영업시간 단축이라는 것은 생각은 커녕 꿈조차 꿔보지 못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외수당도 받지 않으면서 매우 과중한 시간외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금융노조의 지적은 물론 정확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외수당이 없다고 시간외근무를 거부하고싶거나 상사에게 찍힐까봐 할 수 없이 시간외 근무를 하는 은행원은 없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물론 시간외수당을 받으면 좋지만, 물론 넉넉한 인원으로 정상퇴근을 하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어디 그렇습니까? 시중은행원에게 8시간 근무는 그저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합니다. 네 시 반에 은행셔터는 내리지만 후문을 통해 들어오시는 고객을 다섯 시, 다섯 시 반까지도 응대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주택잔금대출취급을 위해 토요일, 일요일에도 부동산중개업소로 출근하고, 재래시장근처에 근무하는 은행원은 조기출근해서 아침 여덟시부터 2인1조로 시장을 다니며 파출수납하는 것을 당연한 일상이라 여기는 것이 보통의 은행원입니다. 이는 여유로운 고객만족 운운이 아니라 치열한 금융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용할 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마다않는게 은행원의 일상이고, 새내기 행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은행원의 기본인데 과중한 업무량을 덜겠다고 고객을 외면하는 발상을 하다니요? 벼락맞을 일입니다.
고객을 응대하는 영업시간을 줄여 시간외근무를 덜하는 것 보다는 밤이라도 세울테니 일거리가 많고 경영성과가 좋아서 구조조정의 불안없이 정년까지 무사히 마치는 것이 저를 포함한 모든 은행가족의 소망입니다.
은행원의 퇴근시간 정상화를 위해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금융노조의 충성심엔 존경을 표하지만 이번 일은 어째 우리 은행원들의 심정과는 촛점이 좀 안 맞은 것 같은데... 안쓰러우니까, 그저 한 번 해본 소리지요?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