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자료가 부족하던 시절에 ‘자료 있는 수업...맨손 수업을 지양하자,’라는 구호를 교실마다 써 붙인 적이 있었다. 교과서만으로도 충분한데 교과서 활용도 다 하지 못하면서 사족(蛇足)에 불과한 자료가 전시효과로 필요할 때도 있어서 교사들끼리 농담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82년도에 나는 김천 서부초등학교에서 4학년 아동들에게 “빛의 성질에 대한 학습을 하게 되었으니 아침 마다 세수할 때 세숫물에 얼굴이 비쳐 보이는 것을 관찰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더니 교감이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교실에 물을 떠다 놓고 아이들을 불러내서 들여다보게 하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공부하기’를 강조할 필요가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교실에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 후 김천 교육청 관내 학력평가 4학년 과학(당시 명칭은 ‘자연’)과목에서 ‘태양의 복사열과 관계가 있는 것은?’이라는 4지선다형 문제가 있었다. 제시된 4개의 답 중에서 ‘여자의 양산’이 정답이어야 할 텐데 모범 답안은 ‘색안경’이었고 그렇게 채점 처리가 되었다. 이의를 제기해 보았으나 묵살되었다.
교감은 나에게 시내 초등학교에서 과학 교육에 유능한 교사들을 만나볼 기회를 주었다. 한수 배워오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그 시험 문제를 어떻게 채점했는지 물어보았더니 모두 모범 답안대로 했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했다.‘복사열’이라는 것은 태양열로 땅이 뜨거워지는 것이니까 양산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태양열이 지구에 도달하는 것은 열의 전달 방법(전도, 대류, 복사) 중에서 복사에 의한 것이므로 태양열 자체가 복사열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었다. 영하의 기온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에게 색안경이 왜 필요하며 그것이 태양열과는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주관적인 판단은 제각각이어서 남을 설득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비디오 자료, 컴퓨터 활용 등이 한때 높이 평가되었으나 비판의 여지도 있었다. 실험,실습,첨단 자료 활용이 중요하지만 교사의 맨손 수업으로도 가능한 학생의 이론 학습도 언제까지나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