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시골의 추녀밑에 옥수수씨앗이 한다발 걸려 있고, 뒷 뜰 한 켠의 커다란 구덩이에는 씨감자가 들어 있던 오래전 시절에, 어른들이 집을 비우신 틈을 타서 그 씨감자를 삶아 먹고 옥수수를 구워 먹었다가 혼이 나면서, 그깟 옥수수와 감자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혼을 내는가 하는 섭섭함에 며칠을 잠 못 이룬 적이 있었다.

어린시절 그 섭섭한 마음은, 내가 종자산업의 일선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몇알의 씨감자와 씨옥수수가 농민에게는 왜 그토록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몇년 전, 농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며 일년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종자산업이, 외환위기로 인해 외국의 거대자본에 의해 인수·합병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국내의 육종개발은 더뎌지고, 외국에서 개발한 종자의 수입판매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는 종자판매시장으로 전락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 반면에 외환위기는 유전공학기술의 도입촉진의 계기가 되어 종자산업의 질적향상을 가져온 시기이기도 하였으며, 국내업체들의 품종개발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킴으로서 무, 배추, 고추 등 일부채소분야의 육종기술력이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성장한 자극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육종개발을 통한 우수한 품종을 보유한 무, 배추, 고추 등의 전통적인 품목의 재배면적은, 농촌노동력의 노령화 등 국내농업환경의 변화와 중국산 김치수입급증을 비롯한 중국산 농산물의 영향에 따른 수익성의 감소로 점차 줄어드는 반면에, 토마토, 파프리카 등의 시설채소 재배면적이 급증함에도 불구하고, 국내개발품종이 없어서, 씨앗의 대부분을 유럽과 일본 등 외국에 의존하고 있어 우리 농민들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비싼 종자구입비를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정부는 종자산업의 육성을 통한 농업인지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종자산업지원을 전담하는 농생명산업정책과를 신설하고, 종자산업중장기대책을 수립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강화고 있는 것은, 일본과 미국 등 농업선진국의 종자산업지원정책에 비하면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농업의 백년대계를 이끌어 가는 의미있는 일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최근들어 도시민들의 주말농장가꾸기, 터밭채소가꾸기 등 가정원예를 통한 여가활용인구가 점차 늘어감에 따라 국민들의 종자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 보다 증가하고 있는 이 때, 종자산업육성과 발전의 전반에 대해 정부와 종자업계종사자 모두가 한알의 씨앗이 농업인의 희망이라는 인식으로 우수한 종자의 육종개발과 보급을 통한 농업인의 실익증진을 위한 노력의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농협종묘개발센터 소장 이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