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언론 학살과 조용수 사형②
(아래 850번에서 이어짐)


3. 군사정권 재생산과 ‘신군부 찬가’
부산.마산 항쟁을 계기로 10.26정변이 일어나고 긴 겨울공화국이던 이 땅에도 ‘민주화의 봄’이 찾아왔다.

그러나 10.26 당시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육군 소장에 지나지 않던 전두환은 그 봄을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일등공신은 단연 언론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이른바 ‘신군부’는 과거 박정희가 그러했듯이 민중지향적인 언론과 언론인에겐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한편 자신들에 호의적인 언론과 언론인에겐 혜택을 주었다. 전자는 1980년 1천여 명에 가까운 해직사태로 나타났고 후자는 언론통폐합으로 신문시장의 독과점을 한층 더 보장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결국 언론은 5.17에 항의해 일어난 광주 항쟁의 진실을 철저히 가리고 왜곡했다. 민주시민들은 왜곡보도를 일삼는 언론사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대다수 신문들은 적극적으로 군의 정치개입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전두환 개인 미화와 ‘영웅담’을 유포해 한국 언론사상 또 한번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전두환에 대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읊어댔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항쟁에 대한 왜곡보도가 극에 달했던 1980년 5월부터 전두환의 전역과 대통령 당선이 함께 이류어지는 그해 8월까지 한국 언론은 전 장군을 역사적 지도자로 분칠했다.

중앙일보는 이른바 ‘신군부’가 집권야욕을 드러낸 5.17조치에 대해 바로 이튿날 ‘자제와 화합으로 국가적 시련을 극복하자’는 사설(1980년 5월 19일)로 화답하고 나섰다. 광주 시민들이 군부에 의해 학살당하던 시점인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 사회면은 머리기사로 ‘무정부상태 광주 1주…바리케이드 너머 텅 빈 거리엔 불안감만…’을 내보냈다. 민주시민을 ‘난동자’로 몬 이 기사를 쓴 가자는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현재 김대중 주필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같은 날 사설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우리 언론의 왜곡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비극의 나라를 우방으로 둔 그 나라(미국)에 대해서 목하 거추장스런 짐이 돼있는 우리로선 당혹스런 착잡한 심정마저 누를 길 없다.” 학살당하는 광주시민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오히려 미국에 ‘누를 끼쳐 착잡하다’는 심경을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드러내고 있다.

‘신군부’가 민주시민들을 학살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 신문들은 전두환 개인에 대한 영웅화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새 역사 장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이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이 8월 19일부터 3회에 걸쳐 연속기획을 내보낸 뒤 모든 신문들이 앞다투어 ‘인간 전두환’ 찬가를 불러댔다. 경향신문은 전두환을 “서릿발 같은 결단력 뒤에 훈훈한 인정”이 있고 “사생관이 선 의리와 정직의 성품”을 지녔다고 부각했다.

이어 나온 조선일보의 기사 ‘인간 전두환-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8월 23일자)은 기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아첨에 가깝다. 같은 날 ‘전두환씨를 차기 대통령으로 추대한 전군지휘관회의’를 다룬 조선일보 사설은 더욱 노골적이다.
“국민 일반은 크게 안도와 고무를 간직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8.21 군 결의’는 이러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한층 더 공고히 뒷받침하고 보장하는, 일찍이 없었던 국가 간성들의 담보의 표징이다. 건국이래 모든 군이 한 지도자를 전군적 총의로 일사불란하게 지지하고 추대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 다음날인 8월 24일치 조선일보의 통단 사설 ‘길-새로운 길잡이가 나타나는데 붙여’에서는 궤변으로 군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고 신군부의 집권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어떠한 국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어떠한 일이 얼어나더라도 군인만은 절대적인 중립을 지키고 오로지 군사적인 임무에만 전념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데에는 분명히 사고와 인식의 맹점이 있다. …군이 안보의 견지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며…군이 진일보하여 나라의 강력한 구심체를 형성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 또한 이 나라에 있어서 현실을 사는 논리의 필연적인 귀결인 것이었다.”

중앙일보 8월 27일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 직후 4차례에 걸쳐 ‘솔직하고 사심 없는 성격 전두환 대통령 어제와 오늘-합천에서 청와대까지’를 실었다. ‘혈연.지연 거부는 천성적’이란 제목을 단 이글에서는 “솔직 담백하고 청렴결백했던 전 장군은 공사가 분명했다.…군에서 전 장군은 자리를 옮겨도 흔히 말하는 자기사람은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고 전한다.

동아일보 8월 29일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 우국충정 30년-군생활을 통해 본 그의 인간관’을 내보내 그의 미덕을 한껏 선전했다.

전두환과 이른바 ‘5공 정권’에 대한 찬양은 1980 5월과 8월에 그친 것은 아니다. 전두환 정권 내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서특필되었고 미화되었다. 언론의 눈부신 찬가에 대해 전두환 정권은 적극 보답했다. 1981년 3월 25일 치러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정당 후보로 입후보해 금배지를 단 언론인은 모두 28명이었다.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980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최병렬씨 등 8명이 합류했다.

언론은 민주시민들의 전두환 정권 타도투쟁과 직선제 개헌 투쟁이 불붙어 가자 1986년 10월 느닷없이 금강산 댐 소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이에 앞서 6월에 터진 부천서 성 고문 사건은 정권의 부도덕성과 함께 타락한 언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시위 참가 여학생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경찰관이 상상도 힘든 못된 짓을 한 사건을 놓고 언론은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했다.

조선일보는 “성적 모욕 없었고 폭언 폭행만 했다”(86년 7월 17일치)는 검찰발표문을 제목으로 뽑았다. 나아가 “운동권, 공권력 무력화 책동”이란 제목도 등장했다. ‘부천서 사건-공안당국의 분석’(86년 7월 7일치 보선일보)에서는 “급진세력의 투쟁전략 전술 일환-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고 사건의 성격을 악의적으로 규정했다. 중앙일보도 “성 모욕행위는 없었다”(86년 7월 17일치)며 검찰발표문을 제목으로 뽑았다.

한국언론의 이런 보도 뒤에는 정치권력이 내려보낸 보도지침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계엄해제 보름 전인 1981년 1월 9일 문공부 내에 홍보조정실을 신설했다.
홍보조정실은 각 언론사에 ‘홍보조정지침’을 내려보내 기사의 내용에 대한 규제뿐만 아니라 기사의 크기와 제목 심지어 사진게재 여부까지 간섭했다. 예를 들어 앞의 성고문 사건과 관련해 보도지침을 보면 그 지침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지면에 반영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오늘 오후 4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크기는 재량에 맡김) △검찰 발표문 전문은 꼭 실어줄 것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아 줄 것 △이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 하지말고 성모욕 행위로 할 것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보도 내용 불가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 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여성단체 등의 사건 관계성명은 일제 보도하지 말 것.”
문제의 보도지침들은 1986년 9월 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도움으로 서울 명동성당 소강당에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의해 폭로되었다.

노태우 정권이 강경대 군을 대낮에 타살한 뒤 전국적으로 불붙은 노태우 정권퇴진투쟁이 흐지부지 된 것도 기실 한국언론의 유서사건 보도 때문이었다. 유서를 대필했다는 사실확인이 안 된 보도를 대대적으로 해나감으로써 민주화운동은 결정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이어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외국어대 학생들로부터 밀가루를 뒤집어쓴 사건을 조선.동아.중앙일보가 모두 대서특필함으로써 노태우 정권은 위기를 벗어나 공고해졌다.



4. 군사정권체제의 청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한국언론은 친일에 이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과 유착해왔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언론은 이렇게 군부쿠데타와 군살정권에 결탁했을까. 그 뿌리는 한국언론의 원점에서 찾을 수 있다. 철저하게 친일을 하며 일제에 부역했던 언론들은 해방이 되었을 때 당혹했다.

해방이후 친일언론은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모든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세웠다. 가령 동아일보는 사설((1948년 5월 10일자)에서 “해방 전의 애국자가 해방 후에 정권욕에 사로잡혀 공산 파괴분자와 야합한 자도 있을 것이요, 해방 전에는 신통치 않았으나 해방 후에 열렬한 독립전사가 된 분도 있을 것이나, 과거보다도 현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정의 도움으로 신문을 복간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친미 사대주의적 편집방향에 서왔다. 미국의 존재는 친일파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었던 셈이다.

그들의 기득권이 다시 4월혁명으로 위협받았을 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군사정권은 한국언론의 기대에 전혀 어긋나지 않게 경쟁적인 진보언론사를 폐간했고 친일의 부끄러운 과거를 지닌 신문사와 재벌 신문사를 적극 육성해갔다. 박정희 자신이나 신문사 사주들 두루 친일의 과거를 지닌 점도 주시해볼 만한 대목이다.

결국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며 신문사는 중소기업 수준에서 신문재벌로 급성장했고 광고의존도 또한 급증했다. 신문사 수입 가운데 광고수입 비중은 1961년 20%대에 머물렀지만 1993년 후반에 이르면 80%를 넘어서게 된다. 광고 매체로서의 자기 성격이 분명히 드나난 셈이다. 그 결과는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대변하는 지면으로 나타났다.

박정희에 이어 집권한 전두환 또한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기에 경제성장과 언론통제 전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언론사들 또한 박정희에 그러했듯이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권력에 주저 없이 추파를 던졌다.
그 결과였다. 30여 년 지속된 군사정권아래서 조선.동아.중앙일보는 여론시장을 과점하는 시장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두루 언론사를 정리하면서 살아남은 언론사들에게 독점적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경쟁 없는 독점 시장체제에서 늘어나는 광고 수요는 언론사 사주에게 막대한 경영이익을 보장했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가 그러했듯이 그를 지지해준 신문사들에 특혜로 보답했다. 가령 광고물량이 크게 늘어나자 신문사들은 지면을 늘리기 위해 윤전기 도입에 나섰다. 전두환 정권은 윤전기 수입 관세를 20%에서 4%로 대폭 깎아주었다. 독과점 보장과 각종 특혜로 1981년부터 87년까지 조선.동아.중앙.한국일보의 연평균 매출액 증가는 19%에 이르렀다. 신문사 매출액도 6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

군사정권 시기에 축적한 튼튼한 물적 기반으로 신문재벌의 수준에 이른 신문사들은 재벌이 갖지 못한 여론형성의 사회적 영향력까지 지니게 되었다. 언론권력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까닭이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군사정권에 결정적 균열이 생기고 노태우 정권을 마지막으로 군부출신 대통령이 사라졌을 때 언론권력은 자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해방공간에서 친일 경력으로 민족독립운동 세력에 위협을 느꼈듯이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 민주화세력에 대해 부담을 느낀 언론권력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논리와 체제를 여론화해나가는 데 앞장섰다.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이나 국가보안법 등 민중 배제적인 정책과 억압적인 법제가 군사정권이 퇴각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언론권력이 군사정권의 적자로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과 광고를 매개로 굳게 손잡은 언론권력은 그 스스로 민중배제의 정치경제 논리를 본능적으로 체현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 언론권력은 군사정권의 대표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데 앞장섰다. 조금이라도 민중지향적인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들에 대해선 여지없이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김영삼 정권이 한완상 통일부총리나 이부영 민주당 위원(현 한나라당), 김대중 정권의 최장집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모두 언론권력의 ‘사상 검증’ 대상으로 물러나거나 곤욕을 치렀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매국을 일삼던 수구언론이 해방 뒤 친일을 감추고 생존하기 위해 내세운 ‘빨갱이 논리’가 반세기가 지난 뒤 민주화공간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숱한 민중의 희생적인 투쟁이 있었음에도 군사정권의 잔재들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자극하며 활개치고 있는 까닭도 30여 년간 군사정권과의 밀월 속에 살찌 언론의 엄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군사정권의 잔당들은 김영삼 정권에도 합당으로 동참했고 김대중 정권에도 공동여당으로 참여했다. 쿠데타의 원흉인 김종필의 정치곡예는 상징적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군사정권의 정책과 사고의 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언론권력이 김영삼-김대중 정권의 무능과 우유부단으로 한층 더 정당성을 지닌 채 우리 사회 여론 형성을 오늘도 좌우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군부 및 재벌과 30여 년 유착해오며 성장한 한국언론은 군부의 의사파시즘 이데올로기와 재벌이 드러낸 황제식 경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1961년 12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처형한 군사정권체제는 40년이 지난 2001년 12월 현재도 말끔히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 언론과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똬리 틀고 있다. 2001년 한해 언론개혁운동이 우리 사회에 확산된 이유가, 동시에 그럼에도 언론개혁의 법제화로 가시적 결실을 맺지 못한 근본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