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끝난 이후의 드라마세트장을 찾는 일이 과히 유쾌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드라마의 주요 장면들을 상기하면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기대하며 찾은 세트장이건만, 세트장은 하나같이 허술하게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관리가 부실하여 찾는 이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경우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전에 여러 신문들에서 방치된 세트장 때문에 각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번 휴가기간 동안 거제를 중심으로 남해안을 탐방하는 일정으로 휴가계획을 세웠고, 마지막 올라오는 길에 주몽세트장을 보고 싶다는 일행의 제의가 있었다. 평소에 세트장에 대해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현재 촬영이 진행 중인 드라마의 세트장이어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멀리 돌아가는 일정이지만 가기로 하였다. 별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나주에 있다는 정보 하나만 믿고 무작정 가게 되었다.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되던 차에, 나주시에 들어서니 주요 진입로의 곳곳에 세트장을 가는 이정표를 세워 놓아서 찾아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은 없었다.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촬영이 있는 동안에는 방문이 불가하다는 현수막을 힐끗 보기는 하였지만, 오늘 촬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일단 가보기로 하였다. 가는 도중에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차량행렬도 함께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편안한 마음으로 역시 촬영중인 드라마라 인기가 다르다는 기대감 속에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다른 차량의 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차하느라 조금 늦게 하차하여 세트장으로 걸어갔는데, 그때 갑자기 옆에서 우리를 불러 세우는 것이었다. 오늘 촬영이 있어서 촬영에 방해되기 때문에 방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 앞서 온 일행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촬영장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먼저 들어간 그 일행들은 모 국회의원과 그들을 수행하는 지방의원들인 손님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우리는 더더욱 이분들이 방문하였다면 촬영진행이 어려울 테니 입구근처라도 둘러볼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멀리 서울에서 왔으니 이해해달라는 읍소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국회의원은 손님이고 우리같이 평범한 시민은 뭐냐는 식으로 항의도 해보았지만, 촬영 시에는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는 것이 방침이고, 조금 전 들어가신 분들은 관계자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였다. 백번 양보해서 촬영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인하냐, 우리같이 헛발로 돌아가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였지만, 촬영일시를 홈페이지에 공지하였고, 또 촬영 중에는 방문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걸었기 때문에 이를 보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우리의 책임이라는 타박만 들었다. 실랑이 하는 도중에 무궁화 뱃지를 다신 분들이 계속해서 촬영장에 입장하고 있었고, 기분이 잡쳐서 그냥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MBC홈페이지를 방문하였지만 세트장 방문제한과 관련된 공지는 찾아볼 수 없어서 기분이 더욱 나쁠 수밖에 없었다.

신문기사를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주시에서 주몽세트장 건립을 위해 80억원을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없는 예산을 쪼개가면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토록 노력을 하는데, MBC는 이런 지원을 받고 지은 세트장을 가지고 멀리에서 찾아온 방문객을 이토록 냉대해도 되는 것인가? 촬영하기 위해 세트장을 만들었지, 방문객을 받기위해 세트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입구경비원의 항변이 새삼 귓가에 맴돈다.

나주시에서는 지속적으로 사후 관리하여 주몽테마파크로 운영하겠다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의 촬영 시에 피크를 이루다가 점차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세트장의 발길도 뜸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한다면, 촬영 중에 지자체와 방송국 모두 윈윈하는 전략을 세울 수 없는지 궁금하다. 촬영중이라면 입구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모형을 전시하거나, 촬영하는 장면을 모니터로 비춰준다거나, 또는 촬영 중에도 촬영에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촬영현장의 일부를 관람할 수 있는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한 시설을 설치하거나, 촬영중간 중간에 스케줄을 정해서 간단한 펜사인회를 개최하는 등의 이벤트를 통해서 방문객을 유인할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주몽과 관련된 고대사를 이해하거나, 철기와 관련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촬영기간 동안 유료 방문객수를 늘리는데 MBC와 나주시가 공동으로 노력한다면, 나주시는 초기투자의 부담을 경감하면서도 사후관리를 위한 준비를 미리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MBC역시 다른 지자체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이후 다른 드라마의 촬영을 위한 세트장 부지 확보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 않고 지자체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횡포를 부리듯이 세트장을 관리운영한다면, 어느 지자체가 드라마세트장을 반갑게 유치하고자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