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최고 수뇌님께 보내는 편지-
“도마도, 핵무기보다 더 깊은 교훈”

“침묵의　저　끝”＜２＞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앞서 올린 글월에서 저는 김정일 님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의 견해를 수렴하고 뭐든 헐고 뜯고 악의적으로 꼬집기 좋아하는 현대습성의 위협에서 벗어나 뒤늦게나마 그대로 호칭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김정일 위원장께 ‘님’자를 붙이려고 하니 그렇지도 않은데 친북이니 뭐니 하지 않을까 겁이 나는 겁니다. 제 멋대로들 갖다 붙이고 헐뜯고, 차라리 그런 입에 대고 세금을 부과시키든지 해야지 어디 사람이 살 재간이 있는가 말입니다.

한 늙수구레한 여인이 지난 번 편지를 자신도 읽었다면서 살살 얼러도 시원찮은데 속 긁는 소리를 왜 하느냐고 말하더군요. 숲을 보며 나무를 볼 줄 모르는, 나무를 보면서 또 숲을 보지 못하는 그 청맹과니는 제가 당신께 보내는 편지의 진솔함에 담긴 의미는 꿈에도 파악하지 못하는 엉터리였습니다.

그러고도 종알종알 아는 체를 하는 겁니다. 특출 난 것이 전혀 없는, 글자 그대로 전문 지식인도 아니면서 긴 척하는 무리들이 들끓는 세상입니다. 그는 오늘 황사를 말하고 있고 마스크를 준비하면서 상당히 아는 체를 하고 있을 텝니다. 황사가 어디서 발생을 하여 어떻게 우리의 호흡기에 스며드는지도 모르면서요. 거기에는 ‘교토 의정서’가 대두되어야 하고 이념 보다 더 무서운 지구 사막화의 재앙에 대해 대비책 마련이 얼마나 시급한지도 전혀 모르면서요.

거기에 먹고 사는 게 초특급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경제적 문제에 대해 언급할 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쏟아져 나와 길을 막고 있는 현실은 까맣게 잊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무슨 세미나다 하여 통일에 관한 갑론을박 바쁘기만한 분들을 보며 뚝 잘라 저희 단체가 추구하며 일로 매진해 가고 있는 경제적 개념의 프로젝트에 대해 공산주의 식으로 말하면 ‘선전’을 조금 하려고 붓을 들었는데, 우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부터 말씀드릴까 합니다.

금세기 평화정착을 추구하여 정책을 모색해 가는 데 있어 아무래도 당신께서 매우 큼지막한 열쇄를 쥐고 계시는 듯 하고, 당신의 생각을 매우 비중을 들여 받아들이는 우리와 우리의 주변 4강 아니, 당신을 뺀 5강에 의해 다각도의 정책 변환도 가능하므로 필요불가결한 상태에서 저의 시도는 매우 유효적절할 것일 텐데도 누가 들어 그것을 인정해 줄까 의구심이 일기는 합니다.

일개인으로서도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보인다라던가 인생이 달라진다고들 합니다. 그것을 당신께 결부시키고 또 국한시켜 당신의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세계 역사가 달라질 수(미국이 북한 문제를 틈틈이 대 이슈화 하고 있질 않습니까?)도 있다는 건 점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일 터인데, 그동안 6자 회담이 여러 번 이루어진 바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 남북한 장/차관급 회담 또는 남북한 정상회담 등이 수차례 거론 되었고 제의와 거부, 그리고 수락 등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온 국민이 거의 다 한 번씩은 입에 담았던 퍼주기식 정책까지가 있었습니다.

매우 외람된 얘깁니다만 무조건적인 퍼주기 정책의 폐단에 대해서는 당신께서도 인지하고 계시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퍼주기 정책, 거기에는 당신께서 마땅히 지니셔야 하는 자존심의 부재가 거론이 되고 그것은 바로 북측의 최고 수뇌이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말입니다.

문득，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생각나 말씀드리는데, 어린 시절 제게 정행순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6학년 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그 애의 집안은 가난했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혼자 운동을 하는 척하다가 물만 마시던 애였습니다. 처음에는 가난을 게으름의 필연적 소산으로 치부했던 저의 오만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그 애를 나무랐습니다. 왜 점심 도시락을 챙겨오지 않았는가고. 그러다 그 애의 눈가에 내 점심 도시락에 와 닿는 열망의 눈초리를 느끼게 되었고 드디어 함께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양은으로 만들어져 있던 제 도시락은 눌러 담은 밥 때문에 부풀 정도가 되었고 나중에는 밥하는 아즈머니에게서 아침마다 나무람을 들으며 도시락을 두 개씩 싸들고 가서 하나는 정행순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또 같은 짓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도록 되어버렸는데, 그 애는 내가 준 도시락을 비워 자기 집에서 가져 온 빈 도시락에 싸들고 집으로 가져가는 겁니다.

아주 친해져서 터놓고 그 애가 내게서 받아간 그 밥은 이미 식어 찬 밥덩이가 되어 있었을 터인데도 그 애의 가족들에게 상당히 도움을 줬던 모양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훗날이었는데, 그 애는 또 방과 후 골목길을 뒤지며 신주머니에 뭔가를 주어 담고는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애가 신주머니에 주어 담고 있는 것이 유리 조각인 걸 알았지만 자세한 것도 모른 채 함께 다니며 유리 조각을 주어 그 애의 신발주머니에, 그리고 나중에는 내 신발주머니에 밀어 넣어 담았습니다. 그렇게 유리 조각이 담기고 있던 내 신발주머니가 온전할 리 없었고 또 그것으로 집에서 바느질을 돕는 아주머니 등 식구들에게 구박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엔가 그 애를 따라 간 곳은 전구를 입으로 불어 만드는 가내공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정행순이가 신발주머니들에서 나온 유리 조각들을 저울에 달게 하고는 셈해 주는 돈을 받는 걸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저를 가끔 부끄럽게도, 어이없는 실소를 머금게도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부잣집에서는 ㄱ자로 꺾인 긴 마루에 유리창으로 된 미닫이문을 달아 겨울 방한용으로 삼곤 했는데 여름이 되면 유리를 모두 빼내어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꺼내어 마루 한쪽에 밀쳐놓은 창살에 끼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곡간 창고의 한 모퉁이에 정갈하게 간추려 세워 놓았던 유리창들은 제 어린 시절의 최초의 범죄를 유발하게 만들었던 물건이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한 장씩 빼내어 골목에서 바닥에 놓고 깨뜨려서는 신발주머니에 담아 들고 가 정행순에게 주었습니다. 전혀 조건은 없었고, 어리석은 그 짓이 횟수가 잦아지는 동안 여름이 점차 무르익어갔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 애의 요청으로 그 애를 따라 그 애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인상적인 광경 하나가 마루 한 가운데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애의 어린 사내 동생이 아랫도리를 벌거벗은 채 앉아 있었는데 손에는 도마도를 들고 있었습니다. 두 세살짜리 그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도마도는 아주 잘 익어 반은 터져 두 손이 온통 빨갛게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른 배 아랫 쪽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고추가 마루 바닥에, 도마도로 배를 불리다 못해 부풀은 배에 눌려서 말입니다.

바로 그 도마도로 한 해를 나는 모든 것을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알아차릴 겨를이 없이 정행순의 어머니가 가져다주는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너무나 진기한, 처음 먹어 보는 꽁보리밥에 김치를 담은 작은 옹기그릇. 된장 한 수저를 담은 또 하나의 작은 옹기그릇에는 풋고추와 작은 멸치 몇 마리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습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가난은 그래서 가끔은 운치와 정서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물론 그 때는 들지 않았지만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가끔씩 제 마음 속에 스며들곤 하는, 매우 부당하고 죄스러운, 사치스러운 생각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내게는 꿈의 요람처럼만 느껴지던, 마당 한 가운데가 온통 도마도 밭인 그 집에서 나설 때였습니다.

일부러 때를 맞춰 돌아오신 듯한 정행순의 아버지가 긴 막대에 줄을 매어 연결시킨 두 개의 망태기에 하나 가뜩 도마도를 담아 어깨에 매고 일어서며 저를 향해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어서 앞 서거라.

저는 얼마나 당황했는지요. 그의 엄한 명령에 반쯤 혼이 나가서 집에 당도한 저는 거의 죽은 목숨이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둘 째 가라면 서러울 엄하기만 한 저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너의 부친을 뵈어야겠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너희 집 유리창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게고 너 심성 고운 거 알겠다만 우선 네가 그여 망가져버릴 테니 안 되겠다. 네가 그저께도 행순이 헌 운동화 하고 바꿔 신었지? 지난 번 운동화도 그랬고, 그건 앞창이 들려 걷기조차 힘들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신고 집엘 갔냐? 매일 점심 싸오느라 고생 많이 했다. 이제부턴 그 짓 안 해도 되.

그의 음성은 내 귀에 마치 천둥처럼 울렸고, 어깨에 걸쳐진 장대는 저의 정수리를 겨냥한 듯했으며 대롱거리며 우리를 동반해 오고 있는 큼지막한 두 바구니의 도마도는 엄한 질책과 내가 죽을 때까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교훈들과 함께 섞인 채였습니다. 대문을 거치고 중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저는 거의 초죽음이 되다시피 했는데 이상한 일이 뒤를 따른 것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였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안방에서 대청마루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식구들과 작은 실랑이가 있었는데, 어깨에서 막대를 내리고 도마드가 하나 가뜩 담긴 두 개의 망태기를 마당에 놓고 머리에 쓰고 왔던 밀짚모자를 벗어 두 손으로 단정히 모아 든 그가 대청마루 위에 높이 서 계시는 저의 아버지를 향해 공손히 절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아이의 한 반에 있는 딸애의 애비인데 춘부장께 드릴 말씀이 있어 왔노라고.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학부형’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의 격차가 단박에 줄어드는 순박한 풍조가 어느 만큼 살아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낮추며 매우 부드럽게 그를 안방으로 맞아 들였고 부엌에서는 술상을 보느라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안방에서 웃음소리까지 났고 조금 거나해진 두 어른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제 가슴에 그대로 솟구치던 수수께끼는 이후 얼마가 지나도록 풀리진 않았습니다만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독백으로 인하여 내가 자라 어른이 되면서부터 그로 인해 마음 잡히는 순간이 늘어만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마도 값이라도 하라고 돈 얼마를 줬는데도 기어히 받아가질 않더구만. 그 돈이면 도마도 철 지나고 겨울 장사를 시작해볼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

제 아버지의 그 말씀이 또 하나의 교훈으로 내 가슴에 남아 안착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거기에서 저는 옳고 그름을 배웠고 정의라는 걸 전수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아주 짤막한 순간에도 마음속에 그분을 떠올리는 묘한, 그리고 분노와 희열 속에서도 아주 자주 떠올리는 묘한 버릇이 제게는 생긴 겁니다. 단 한 분 진정으로 존경하는 그 분을 눈앞에 떠올리는 그 버릇 말입니다.

도마도, 핵무기보다 더 깊은 그 보답은 한 인간을 정화시킨 엄청난 교훈으로 제게는 아주 길게 남아 있는데 지금 그가 계셨다면 추대했을까요? 우리들의 교훈을 다져 줄 수 있는 기관의, 혹은 교수나, 박사들 그런 식자들로? 아니면 국회의원으로? 아니면 대통령으로? 혹은 당신으로 추대해서는 안 되는 겁니까?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끔은 울고 싶은 시간만큼 분노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왜죠?

무조건은 언제나 조건이 수반된 미학적인 결과의 빗나간 표현인데도 모두들 깜빡하는 겁니다. 환원하여, 저는 이제까지 김대중 정부시절의 햇볕정책, 그리고 무조건적이라 말하는 퍼주기식 정책을 성토하거나, 그리고 진심으로 그것을 반대하거나 비난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말하면서 ‘그러나’를 덧붙였을 뿐인데 지난 2005년 어느날 수유리에 있는 통일 교육원 간담회에서 그예 한 마디 한 적이 있습니다.

방법론에 있어 햇볕정책의 일환인 퍼주기 식 필수적인 방침이 매우 지혜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해 언급했던 겁니다. 필요조건의 제시가 미흡했다기 보다 전무했던 것도. 그냥 퍼준 것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엄연한 조건을 넌지시 표명했을 터인데 기실 상대의 마음 가운데 한 알의 씨앗조차 심어내지 못한 거라고.

분명히 싹이 돋아나고 풍성한 열매 맺힐 그런 것으로 필요조건의 제시가 있었어야 했는데 표면에 드러날 효과, 포플리즘 만을 염두에 둔, 자신만을 위한 입지적 성과에만 치우친 나머지 필연코 돌아올 수도 있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보답에 대한 준비나 유도 정책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담 넘어 그리운 가족을 두고 반세기 동안 비극적 인생을 회화적으로 보이며 살아가는 남북한 이산가족이 무슨 무슨 허가증을 받아 서로 2,3개월 씩 허가 된 기한 동안 함께 살며 자유롭게 남과 북을 넘나들 수 있는 그런 보답을 얼마든지 유도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상대가 불쾌하지 않게 첨예한 방법을 제시하고 노력하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 그대로 당신을 그 장본인으로 마음 움직여 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말입니다.

뒤늦게,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이산가족 상봉이니 뭐니 하면서 무슨 장날이나처럼 남북의 비극적 히로인으로 이산가족을 차출하여 일회성 이벤트로 메스컴이 온통 세상에 대고 칠갑을 하는 모양새를, 웃고 있어도 보기 민망한 나이의 처연하고 주름진 얼굴들에 비통함이 담긴 눈물바가지를 씌워 온 세상에 공개합니다. 세계인이 보도록 유도하면서 말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저는 너무나 창피해서 아예 텔레비전을 꺼버립니다. 우리 민족의 남이 보기에 부끄러운 프라이버시랄까, 왜 그런 초라하기 짝 없는 그림을 남발해야 하는지 저는 결코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기획이 조잡한 만큼 내용으로는 이념폐단 올림픽 제전 못지않은 ‘그 짓’을 크게 떠벌이면서도 국제적 미담이 될 수도 없는, 그저 그냥의 소모전에 그칠 뿐인 것으로 무대도 스포트라이트도 조악한 그 짓에는, 관객 위에 군림하며 만족하여 무릎을 치고 있는 연출자는 웃고 있지만 공연자는 눈물로 실신하다시피 늙어 쇄진한 육신에서 온갖 에너지와 칼로리를 태워 없애고 있는 겁니다. 그 바람에 덕을 보는 건 금세기 최고의 비극적인 씬으로 브라운관을 메꾸는 우리 매스컴들이겠지만 말입니다.

왜 그토록 무지몽매한 지침 가운데 탄생한 그 짓을 이제껏 조장해 오고 있는지, 당신의 마음 하나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면에서의 감동도 얻어내지 못한 채. 그런데 어제 누군가가 와서 저더러 통일을 그토록 열망하는 분이니 꼭 이루어지게 될 거라는 말을 했습니다. 위로였지요. 헌데 저는 말했습니다. 누가 통일을 열망하고 있느냐고요. 나는 아니라면서요.

통일해서 뭐합니까? 통일 되면 삼천리강산 오물찌꺼기가 녹아 하수구들로 빠져나가기라도 한답니까? 너무 무책임한 희구는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라 말했습니다. 통일이라니, 청군 홍군 하며 갈려 있다가 한쪽에서는 적화통일을 꿈꾸고 한 쪽에서는 청화(맹목적인)통일을 꿈꾸고.

그럴 바엔 그냥 두는 겁니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통일’이라는 두 글자보다 글자 수가 더 늘어나는 게 귀찮은 것이 아니라면 ‘갈등해소’라던가 ‘이념해소’라는 그런 게 더 실용성 있는 구호가 되지 않겠는가고. 이념처럼 무섭고 끈질긴 아집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라는 명제를 놓고 속 시원한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터에 무조건적으로 모두 터서 한데 모아놓으면 어떻게 되리란 걸 모르는 분들이 그저 통일! 통일! 하는 게 아닌가고 말입니다.

그런 말 싫어하는 통일 어쩌고 하는 식자들로부터 오늘부로 욕 많이 먹게 되겠지만 저는 그런 거 두렵지 않습니다. 통일독일의 후유증을 예로 들어 읊어댈 필요 까지도 없습니다. 눈앞에 명약관하 한 사실을 알면서 아무나 무조건적으로 읊어댈 때는 살인적인 혐오감까지 느끼고 있는데 어제 그녀는 말한 겁니다.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제가 우스꽝스럽게 반응한 것까지를 포함해 시대의 미아들에게 소나기처럼 퍼붓고 싶은 얘기는 또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발상으로 남남갈등 해소, 그림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는 온갖 작태를 먼저 시정해야하지 않겠는가고 말입니다. 당신께서, 그리고 이북이 달라져야만 하는데 절대로 달라지지 않은 것도 바로 저는 우리 때문인 거라 생각합니다. 조금 잘 산다 싶은 우리를 보며 당신들이 외로울 때, 힘겨울 때, 의지가지가 없는 자체를 놓고 짜증을 부리고 있는 거라고.

벼랑 끝 외교도 이해득실을 가름하기 어렵고 잘 나온다 싶어 기대고 싶은데 쌈박질이나 하고 있는, 당리당략이나 또는 라이벌 족의 치열한 싸움은, 갈등은, 늑대와 표범의 싸움이 저리 가라인 겁니다. 서로 이빨을 드러낸 채, 걸핏하면 초전박살을 시도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죽여야 하고 죽이기 위해 첨예한 방법을 모색하며 물고 뜯고.

성경 말씀에는 상대(형제)의 눈에 티를 보며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어쩌다 상대의 약점이나 티를 발견하면 바쁜 세상에 일할 생각 다 젖혀 놓고 이미 피를 흘리고 있는 상대를 물어뜯기 위해 전략을 짜느라 바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선거전략이라나 하는 것까지를 염두에 두면서요. 그럴 바엔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크게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누군들 달라질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입지조건에 걸 맞는 사안을 찾아서 가장 손쉽고 가장 이익이 되는 일부터 모색해 보자고. 비어 있는 땅에 지뢰가 묻혀있는데 그 지뢰마저를 탐하는 외국 재산가가 있는 것도 아시는 당신이 아니십니까?

세계인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천예의 녹지대이며 생태계의 보고인 DMZ를 아주 조금만 열어 그곳에 관광 상품화 될 조형물로 남북한 공동 평화의 탑 건립 추진을 하자는 것은 부분적 통일을 제안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슈는 결정과 책정(그것은 한시적이고 제약적일망정 남북한 수뇌부의 평화협정 체결과 동시에 발생할 터인즉) 발표가 나간 직후부터 사안 자체가 이미 관광 상품이 되어 수익이 따른다는 사실일 겁니다.

기업은 생산제품을 내고 보다 첨예한 판촉활동을 벌이기 위한 광고비 예산을 책정합니다. 허나,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에는 결코 광고비 책정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측하는 일일 겁니다. 남북한 두 정상의 기공식 때의 흰 장갑 낀 시 삽 자체가 CNN 방송권 계약 체결을 유발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요.

지구상 유일하게 분단되어 있던 국토의 허리에 새로운 제전의 봉화가 오르는데 올림픽이 무색할 것은 명약관하 한 사실이 아닐까요? 그 때부터 공연한 서바이벌 훈련으로 소모되어질 에네르기와 칼로리도 없이 우리 국군과 북측의 인민군이 연중무휴 3교대로 공사현장에 투입 되어지는 그 인력 자체가 축제 무대의 훌륭한 배우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말입니다.

현장 주변을 원형으로 하여 구름처럼 높고 풍성하게 설치 될 천막들과 컨테이너와 가건물들 사이로 남북한 재래시장이 열리고, 그 밖의 부분들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든 관광객들에게 판매할 기념품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열이 될 터인데 그 수익의 반분은 북측의 배당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정전이나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한 우리들의 땅이라고 할 수 없는 UN관할의 그 곳에, 국지적 활용방안을 놓고 남북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6자회담으로 시간낭비나 하고 있을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매 순간 수익이 발생 되고, 쌍방간의 경제가 살아나고, 다 지어 완성이 되면 온 국민 연금이 껑충 뛰어 가산이 되고, 정말이지 감언이설처럼 들리실까봐 길게 말하진 않겠습니다만 유추 해석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한반도의, 아시아의 숨통이며 산소통인 천예의 녹지대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극도로 정제된 프로젝트인 [한반도평화탑] 건립 자체가 경제개념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훨씬 이전부터 저희는 무려 6년간 다듬어진 노하우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쨌거나 누군가는 우리들 인생의, 삶의 이치에 대해서 밝아져야만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됐든 그 쪽이 됐든, 아니면 이쪽 그쪽이 다 밝아져서 눈을 크게 뜨고 저 멀리 눈을 돌리면 우리를 향해 조여 오고 있는 위협에 대해 밝아진 눈으로 보여지기도 하질 않겠습니까? 미래가, 미래의 우리가 살아남아 소위 말하는 세계화 속에서의 경쟁력 강화의 길을 찾아 온전히 갈 수 있는 그 길이?

‘침묵의 저 끝’ 북측의 김정일 님께 보내는 편지 제2호를 보내면서 끝으로 기필코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단법인[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모임]은 무조건적인 통일 지향주의 단체는 아니며 그 안에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위원회는 더욱 아니라는 겁니다.

DMZ에 [한반도평화탑]건립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모색해 보자는 건의, 그리고 운동 단체로 [한반도평화탑]건립에 관한 한 앞으로 누가 들어 진행을 시키든 온 국민 인프라를 구축하여 함께 그를 (혹은 그 기관 등을) 밀고 모두 함께 돕자는 취지에서 오늘도 맹활약을 거듭하고 있는 단체임을 알아주시면 한다는 것을 거듭하여 천명하는 바입니다.

다시 부연하여, 북측에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 하시겠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계속해 문을 두드릴 터이며 외람되이 통일 운운, 통일추구 등 말하기 보다는 서로에게 이익이 간다면 움직여 달라는 제안이며 흥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도 동시에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북측의 최고 수뇌이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먼저 솔선하시어 서로의 생각(이념)을 정화시켜갈 수 있는 혜안을 지녀 주시고 미래를 향한 당당한 게임으로, 작은 토양에 촘촘히 심겨진 나무들로 맞닿아 엉켜진 뿌리들이 가지를 짓찢으며 싸우기보다 세계와 겨뤄 우리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는 게 어떨는지요.

2006년 3월
사단법인[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모임]/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위원회 회장 김나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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