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 범죄 後世에 가르쳐야” 에 대해서
(홍재희) ======= 진실과 거리가 먼 불공정 편파왜곡보도를 거리낌 없이 해온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은
“미국 下院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3일 일본이 2차 대전 때 아시아의 젊은 여성들을 군대 慰安婦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던 사실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性성 노예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이런 끔찍한 범죄를 현재와 미래세대에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노예화를 (업자들에게) 공식 위임하고 조직화했으며 윤간, 강제낙태, 性的성적 폭력, 인신매매를 저질렀다”고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된 일본 정부의 책임도 명시했다. 결의안은 이어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노예화가 없었다는 어떤 주장도 널리 강력하게 되풀이해서 배척해야 한다”면서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일본 내 분위기에 경고를 보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下院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나치 히틀러의 600만 유태인 학살사건이 아닌 일본이 2차 대전 때 아시아의 젊은 여성들을 군대 慰安婦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던 사실에 대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노예화를 (업자들에게) 공식 위임하고 조직화했으며 윤간, 강제낙태, 性的성적 폭력, 인신매매를 저질렀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노예화가 없었다는 어떤 주장도 널리 강력하게 되풀이해서 배척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 안을 통과 시킨것은 나치 히틀러의 야만적인 전쟁범죄를 독일정부와 국민들이 철저히 청산한 것과 달리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야만적으로 행해진 위안부 강제동원을 통한 윤간, 강제낙태, 性的성적 폭력, 인신매매를 저질러 놓고 일본정가 책임을 회피하는 파렴치한 일본정부와 일본국민들에 대한 미국 의회의 경고의 의미가 있다.
(홍재희) ===== 지난 6월말 미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미 의회에서 연설하기를 희망했으나 미의회의 연설이 허용되지 않은 배경에는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했던 일본 군국주의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고이즈미가 참배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집단은 일본정부나 일본 국민들 뿐만 아니라 일제에 충성하면서 매국매족의 반민족 범죄행위를 저지른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도 일제시대의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이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와 함께 위안부 강제동원 에 적극 참여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씨 족벌 조선일보는 오히려 조선일보가 민족정론지라고 큰소리 치면서 반민족 범죄행각을 은폐하면서 민족정론였다고 기만하고 있다.
(홍재희) ===== 일본 옛 육군성에 보관됐던 ‘국방헌납 병기 수령에 관한 건’이라는 1933년 4월15일치 일본 육군성 정무차관실 문서를 보면 1933년 3월에 조선일보를 인수하자마자 방응모일제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일본군에게 조선과 중국에 거주하던 은행장과 기업가, 현역 장성 등과 함께 ‘3년식 기관총’ 21개와 고사포 등을 일본 군국주의 군대에 헌납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방응모 조선일보 일제당시 사장은 1937년 5월에는 조선 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선문예회 회원으로 일본인 17명과 함께 14명의 한국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해 조선총독부의 정책인 사회 교화 달성을 목적으로 조직된 이 단체에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시국가요와 황군(일본군) 격려가 제작을 주요 사업으로 삼는데 적극 기여했다.
(홍재희) ===== 방응모 일제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일제의 총력 운동 단체와 국방 목적 단체 중 하나로 1937년 8월 20일 결성된 애국금차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해 황군 원호와 전비 마련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1938년 6월 22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은 민간 사회 교화단체의 대표자들이 조선 총독부의 종용에 의해 결성된 것으로 조선문예회, 조선방송협회, 춘추회 등 59개 단체와 함께 김활란, 백관수, 김성수(金性洙) 등 개인 56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황국정신의 현양, 내선일체의 완성, 전시 경제 정책에의 협력 등을 그 실천 요강으로 하는 단체였다고한다.
(홍재희) ===== 일제는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 틈이 벌어지자 종래의 전시 체제를 한층 공고한 결전 체제로 강화하기 위해 사상통일, 국민 총훈련, 생산력 확충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고도 국방 국가 건설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해체하고 이를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재출발시켰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도 이 단체의 참사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일제는 이 조직을 통해 황국신민정신의 앙양, 징병·학병의 독려, 증산, 헌금과 공출, 군인 원호 등의 총력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홍재희) ===== 1941년 8월에는 친일 매국매족 집단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임전(臨戰)대책협의회의 위원으로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이 참여해 종로 화신 앞에서 일본 군국주의 침략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채권가두유격대로 나서기도 했다고한다. 비슷한 시기에 임전대책협의회에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자 국민총력조선연맹 사무국 총장 기와기시(川岸文三郞)가 두 단체 통합을 주선해 1941년 10월 22일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이라는 명칭으로 친일 세력을 총망라한 단체가 출범을 맞게 됐다는데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 또한 이 단체의 이사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홍재희) ===== 그런 친일 반민족매국매족 행위를 통해 조선일보와 방응모 사장은 불과 열세살에서 열다섯살 안팍의 한민족의 나이어린 딸들을 일본군의 집단 성폭행의 희생물인 종군위안부로 내모는 반인륜적인 인간 사냥을 통해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와 함께 위안부의 노예화를 통해 윤간, 강제낙태, 性的성적 폭력, 인신매매등의 야만적인 집단 성폭력 범죄집단의 일원이 됐었다. 현 월간조선의 전신인 1935년에 창간한 친일 잡지인 조광(朝光) 1940년 3월호에 실린 방응모 조선일보 발행인에 의해 씌어진 “'2천 6백 년의 기원절'”제하의 친일 매국매족 사설을 한번 살펴보자
'2천 6백 년의 기원절'
2천 6백 년의 빛나는 역사에 청렴강직한 대화(大和)정신과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이상으로써 닥거놓은 성업은 일계직통(一系直統)의 천황어능위(御稜威)를 봉(奉)하여 우리 국민은 이 성은 속에 만폭적(滿幅的) 희열을 느끼고 있다. 유구한 역사는 가고 와서 이제 2월 11일로 2천 6백 년을 맞이하는 이때 오즉 우리는 이 더럽펴 보지 않은 장구한 역사의 흐름우에 자긍과 만족을 느끼고 있거니와 국운이 날로 창성해 가는 우리 일본의 프른 희망과 억센 흥아대업(興亞大業) 달성에 또한 만강(滿腔)의 성의로써 진취해 오는 것이다. 이제 동아(東亞)의 맹주로서의 일본이 오늘날에 이른 것은 오로지 대화국단원(大和國檀原)에 관주(官柱)를 힘차게 세우신 이래 유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끄님없는 성업의 달성에 진력하옵신 자최라 할 것이다.
황국 일본이 명치 유신 이후 일청(日淸), 일로(日露)의 양 전역을 지나 오늘 만주사변과, 지나사변을 격는 동안 우리의 발길은 대륙에 힘차게 드듸서게 되었으니 여기 일본의 뻐더가는 생장(生長) 발전의 힘찬 거름을 볼 수 있거니와 이제 2천 6백 년 2월 11일 기원을 당하와는 천황, 황후 양 폐하와 성수무강(聖壽無疆)하옵심을 삼가 비옵고 천태자 전하, 義宮親王 전하, 照宮, 孝宮, 順宮, 淸宮 4내친왕(內親王) 전하의 御康寧을 빌어 마지안는다.……
이 전국적 제전에 임하여 오인(吾人)은 국운의 창성과 황군 장병의 무운장구를 삼가 기원하며 마지안는 바이다
(참고자료 = 조광(朝光) 1940년 3월호).
(홍재희) ====== 살펴 보았듯이 일제 당시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와 현 월간조선의 전신인 '조광' 이라는 월간지를 통해 계획적이고 치멸하면 주도면밀한 친일 매국매족범죄를 자행하면서 한민족의 나이어린 아들과 딸들을 학도병과 일본군으로 일본 종군위안부로 내모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이런 방씨 족벌 조선일보가 뻔뻔 스럽게 일제시대의 매국매족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행각을 고백하고 민족과 국가와 사회공동체 앞에 사죄하기 는 커녕 방씨 족벌 조선일보가 일제시대에 민족의 정론지 역할을 했다고 공동체를 상대로 기만하고 있다. 종군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일본정부가 사실을 부정하는 것 못지 않게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의 과거 반인륜범죄 행각에 대해 자기부정 하고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 또한 한국사회가 문명의 이름으로 청산해야 한다.
(홍재희) ===== 조선일보와 방응모 사장의 야만적인 인간사냥의 덫에 걸려 강제로 끌려 갔던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중에 생존해 있는 분들이 1992년1월 8일 부터 조선일보사옥으로부터 가까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날에 정기집회를 갖고 일본의 야만성을 규탄하면서 문명적 각성을 촉구 하고 있는데 2006년 3월15일에 700회 째를 맞았고 미국하원의 이번 일본군 종군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킨 14일에도 일본대사관에서 15년째 항의 집회를 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지나간 시절의 전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은 이런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15년에 걸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수요정기집회에 대해서 단한번도 사설의 화두로 쟁점화 하지 않는 비인도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작태를 보이면서 한편으로 북한동포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이율배반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다.
(홍재희) ===== 나치독일에 충성했던 프랑스의 언론과 언론인들은 모두 나치 패망이후에 청산됐다. 중국과 대만에서 일제에 충성했던 언론과 언론인은 모두 청산됐다. 대한민국에서만 일제시대에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충성한 군국주의 나팔수인 조선일보가 청산되지 않고 지금도 민족정론지 행세하고 있다. 이런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최고신문 행세하는 것은 대한민국사회의 반문명적인 야만성을 의미한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를 민족과 문명의 이름으로 청산하고 한국사회의 반문명적인 야만성을 청산하자.
조선사설은
“결의안은 하원 전체회의에서도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번 결의안이 강제적 구속력은 없다 하더라도 일본이 저질렀던 反반인도주의적 蠻行만행을 국제사회에 다시 일깨우고 일본 내 右傾化우경화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정부와 右翼우익이 合作합작해 밀고 나가고 있는 역사 왜곡과 역사 은폐 공작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나 국제앰네스티등은 이미 일본 정부가 야만적인 종군위안부강제동원에 대해서 아직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고 있는 작태에 대해 인류양심의 이름으로 규탄하면서 시정할 것을 강력 촉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야만적인 종군위안부강제동원이라는 반인륜적 패륜범죄에 대해서는 국제법적으로도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야만적인 종군위안부강제동원이라는 반인륜적 패륜범죄를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와 함께 저지른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과 방상훈사장의 조선일보에 대한 패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위한 국제법적인 공소시효 또한 마찬가지로 없다.
(홍재희) ===== 우리가 이시점에서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것은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일제당시 한민족의 얼과 문화 그 자체요 정체성이라고 볼수 있는 한글로 된 조선일보의 친일매국매족 기사를 오랜 기간 동안 찍어내던 친일 매국 매족 윤전기를 1987년부터 2003년까지 장장 17년 동안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해 항일투쟁을 한 조선일보 윤전기로 둔갑시켜 독립기념관의 정체성을 훼손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망국적인 조선일보의 친일 매국매족 윤전기는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과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등의 풀뿌리 언론개혁 단체들의 끈질긴 철거요구에 의해 2003년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철거됐다. 일본의 역사왜곡 못지않게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만들어 가는 역사왜곡 또한 매우 심각하다. 반민족 매국매족행위를 한 방씨 족벌 조선일보가 민족 정론지 역할을 했다는 역사 왜곡보다 더 심각한 역사왜곡도 있을수 없다.
조선사설은
“이번 결의안의 특징은 일본의 과거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역사교육 책임을 明示명시한 대목이다. 일본의 우익단체들은 2001년 그들이 주도해 만들었던 ‘새 역사 교과서’를 비롯한 10여 종의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 등을 삭제해 버렸다. 일본 정부는 그때 한국과 중국 정부의 항의를 받고 是正시정을 약속했으나 ‘새 역사 교과서’ 2005년 개정판은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의 조선 國權국권 강탈과 관련해 4년 전 삭제했던 “한국 내부에서 합병을 수용하자는 소리가 있었다”는 부분만 되살려 놓았다.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이 이 문제에 대해서 사실상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다음 총리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문제의 ‘새 역사 교과서’를 후원하는 議員의원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아 이른바 ‘自虐史觀자학사관의 청산’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곡된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지구촌 가족이 지향하는 21세기의 문명의 이름으로 바로잡아 놓아야 한다. 일본의 과거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몰역사적인 행태에 대해서 미국하원이 결의안을 통해 일본 정부의 역사교육 책임을 明示명시한 대목인데 미국과 미국하원도 일본의 과거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몰역사적인 행태에 대한 책임이 분명히 있다. 미국은 일제패망이후에 형성된 미국과 소련의 국제적인 냉전질서가 형성되자 뉘른 베르크 전범재판을 통해 유럽의 나치 히틀러 잔재를 말끔히 청산한 것과 정반대로 일본의 야만적인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전범들 상당수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미국의 소련견제를 위한 전후 일본 정부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구성원으 로 기용하면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전후 일본의 맥아더 헌법하의 일본정부의 중요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는 미국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청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일본의 정치계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그 시대착오적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홍재희) ===== 그런 일본의 야만성은 미국의 철저하지 못한 패전 일본에 대한 전후 처리과정의 산물이다. 전후 일본정부의 총리를 지닌 기시노부스께도 A 급전범이었으나 미국은 대소련 견제를 위한 일본정부 의 총리기용이라는 형식으로 관용을 베풀었다. 그들 군국주의출신 일본 정치인들의 대를 이은 오늘의 일본 정치인들이 군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후임총리로 유력시 되고 있는 아베신조 현 관방장관은 종군위안부에 대해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주장을 했고 그런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아버지는 1980년대 외상을 지냈던 아베 신타로 이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외할아버지는 일본의 제2차세계대전 A급 전범으로 스가모 감옥에 3년3개월간 복역했다가 풀려나 일본 총리 된 기시 노부스 케(岸信介)이다.
(홍재희) ===== 살펴 보았듯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의 이면에는 미국이 일본 패전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냉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본전범들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전후 일본정부의 구성원으로 참여시킨 것이 오늘날 일본정부의 군국주의역사 왜곡의 토양을 제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본다. 한국도 이승만정권 출발당시 친미반공이면 친일 민족 반역자들도 대한민국 건국과정에 참여시키는 현실적 선택으로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매국매족 반역집단인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살아남은 배경도 친미반공이면 친일 매국매족도 용인했던 8 . 15 공간의 정치적 토양 때문이었다. 일본의 역사왜곡 뿐만 아니라 한국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왜곡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중학교 국사 하권 145쪽 아랫쪽 - '민족실력 양성운동' 란에 보면
“민족 신문인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는 민족 실력 양성 운동에 앞장섰다. 물산 장려 운동을 홍보하고 모금 운동에 앞장 섰으며, 여러 가지 행사를 주관하여 사회·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
(홍재희) ==== 라고 왜곡돼 있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있으니까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바른 가치관을 거꾸로 물구나무 서게 주입시키게 되는 것이다. 일본왕에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적극 지원하기위해 방응모 조선일보사장이 독립군 살상하도록 고사포를 구입해 일본군에 헌납하고 종군위안부 모집에 적극 나서고 일본군 징병징용에 적극나선 일제 시대의 조선일보가 민족 실력 양성 운동에 앞장서고 사회·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고 왜곡돼서 중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은 민족정통성에 대한 모독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일보는 민족을 배반한 극복과 청산의 대상이고 매국매족 신문이었다고 우리나라의 중학생 들에게 바르게 교육시켜야한다.
조선사설은
“일본이 眞心진심으로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와 공동 번영을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증거로 지금은 물론 다음 세대에게도 올바른 역사교육부터 시켜야 한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는 민족 정론지라고 뻔뻔스럽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기만하지 말고 먼저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친일 매국매족적인 정체성으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 조선일보 임직원들이 조선일보를 민족의 정론지로 만들려면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반인륜적인 반민족 범죄행위에 대해 속죄 하기는 커녕 오히려 은폐하고 미화하고 민족의 정론지라고 기만하고 있는 방씨 족벌들을 조선일보와 격리 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홍재희) ===== 방씨족벌은 친일 매국매족범죄를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친미반공을 통해 한국의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하면서 반민주적인 군사독재에 빌붙었고 부동산 땅투기의혹과 불법 호화분묘 조성과 또 얼마 전에는 천문학적인 조선일보의 탈세와 방상훈 사장의 파렴치한 횡령범죄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 유죄를 확정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조선일보의 발행인 자격을 박탈당하기 까지 했다. 이런 방씨 족벌 사주집단과 조선일보를 조선일보 임직원들이 분리하지 못한다면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는 민족과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이름으로 폐간시켜야한다. 조선일보가 그런 시대착오적이고 야만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대한민국의 최고신문 행세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21세기 문명에 대한 배반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고 인류공동의 인도주의에 반하는 야만을 대한민국이 치욕적으로 용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씨족벌사주의 배타적 영향력 행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조선일보를 청산해야한다.
(자료출처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9/200609140569.html)
조선일보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공소장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에 대하여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 3월 5일 창간되었다.
조선일보는 초창기 친일 자본가 단체 의 주도 하에 예종석, 조진태 등 친일 행위로 치부한 반민족 분자들이 차례로 사장에 올라 신문을 경영하였다. 그러다가 1921년 4월 8일, 친일 매국노 송병준이 경영권 일체를 인수하면서 더욱 심한 친일신문이 되었다.
조선일보는 1924년 9월 13일 신석우가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한때 이상재, 안재홍, 조만식 등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조선일보의 경영이나 편집을 맡으면서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표어를 내걸며 민족정신과 신념을 고수하려 노력하기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물러난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일보는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시책에 협력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방응모가 1933년 3월에 경영권을 인수하면서부터 그 친일의 정도가 극심하였다.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는 ‘민간법정 헌장’ 제2조 제1호의 ‘일제강점기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한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행위’에 해당한다. 이에 본 검사단은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를 다음과 같이 기소한다.
1.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보도
(1) 일본 왕실에 찬양하고 아부하는 보도
조선일보는 방응모가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인 1933년 12월 24일에 이미 노골적으로 일본 왕실을 찬양하고 아부하는 사설 을 게재하였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일본은 다른 나라와 달라서 건국 이래로 황실은 곳 일본 전민족의 대종가라는 신념이 잇고, 더욱 명치천황폐하의 어우(御宇)에 이르러 일본이 일약하야 세계의 대국이 되매 일본국민의 황실을 존숭하는 정은 더욱 깁허젓고 근년에 이르러서는 황실중심의 국민주의가 최고조에 달하엿슴을 본다.
일본국민에 잇서서는 황실은 영국 기타의 황실과 달라서 혈통적 친근성과 종교적 존엄을 가지신다”라며 일본 왕실을 ‘일본 전민족의 대종갗로 표현하였으며, 또한 사설 말미에는 “새로 탄생하신 황태자전하께옵서 건전하게 자라시와 후일에 일본을 세계의 문화와 평화와 따라서 인류의 행복을 위하야 큰 공헌을 하는 큰힘이 되도록 하시는 영주가 되시옵소서 하고 축원을 올린다”라고 왕세자의 출생을 축하하였다.
이렇게 1933년도에 이미 일본 왕실에 찬양하고 아부하는 사설을 게재하기 시작했던 조선일보의 행태는 1937년부터는 그 정도가 극심해졌다. 조선일보는 1937년부터 1940년 폐간되던 해까지 해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이 되면 1면 상단에 일왕 부처의 사진과 찬양 기사를 게재하며 일본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조선일보는 1937년 4월 29일 조간 1면에서 ‘봉축천장가절(奉祝天長佳節)’이란 표제와 함께 일왕 부처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천장절제어예정(天長節際御豫定)’이란 일왕 생일 축하 행사 소개 기사를 실었고, 1937년 11월 3일 일본 명치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소위 ‘명치절(明治節)’에는 란 축하 행사 소개 기사와 함께 일본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강령인 를 일본어로 게재하였다.
조선일보는 1938년 1월 1일 조간 1면에서 일왕 부처의 사진 및 일본 왕실의 문장인 국화문양을 큼지막하게 덧붙이며 란 일왕실 신년하례식 소개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와 함께 또다시 일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강령인 를 일어로 게재하였다. 또한 1938년 4월 29일 조간 1면에서도 이란 큰 글자를 덧붙이며 일왕 부처의 사진과 이란 일왕 생일 찬양 사설을 게재하였다.
조선일보는 1939년 1월 1일 석간 1면에서 이란 제목과 함께 국화 문양이 곁들인 일왕 부처의 사진을 게재하였다. 1939년 2월 11일에도 초대 신무왕(神武王)이 즉위한 날이라 하여 일본 건국일로 기념하는 소위 ‘기원절(紀元節)’이라 하여 조선일보는 사설 을 게재, 일 왕실을 찬양하였는데,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무릇 일본정신은 저 물질 중심의 자본주의, 개인주의와도 다르고 전체가 잇슨 후 개체가 잇다는 파씨즘과도 다르다. 일본 정신은 일본 독특한 국민성, 국민 기질에 의한 것으로서 타(他)의 모방 (模倣) 우(又)는 추월(追越)을 불허(不許)하는 바이니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만지(日滿支) 협조 등은 다 서양류의 식민지사상과 다르다. 학제 개혁, 지원병제도의 실시는 그 현현(顯現)의 일례라 할 것이다”면서 일왕 숭배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칭송하고, 조선의 젊은이를 일제의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한 총알받이로 내몰기 위한 조치인 지원병제도를 찬양하였다.
조선일보는 1939년 4월 29일 사설, 에서 “……춘풍이 태탕하고 만화가 방창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천장가절(天長佳節)을 맞이함은 억조신서(億兆臣庶)가 경축에 불감(不堪)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옥체가 유강하시다니 실로 성황성공(誠惶誠恐) 동경동하(同慶同賀)할 바이다. 일년일도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한 은(恩)과 광대한 인(仁)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적성봉공 충과 의를 다하야 일념보국의 확고한 결심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보도하여 당시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생일(천장절)을 맞아 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실으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어미인 ‘옵’자를 사용하였고, ‘황공’도 모자라 ‘성황성공’이라 하며, ‘경하’도 부족해 ‘동경동하’라 하고, ‘충성’이 아니라 ‘극충극성(克忠克誠)’이라 하며, 일왕을 ‘지존(至尊)’이라고까지 부르는 등 일왕을 적극 찬양하고 협력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40년 1월 1일 조간 1면에서 이란 제목과 함께 일왕 부처의 사진을 싣는가 하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게재하였다. 또한 조선일보는 1940년 2월 11일 조간 1면에서는 이란 사설을 게재하였는데, 이 기사에서도 조선일보 “양춘이 내복하고 만상이 활발하여 서기가 팔방에 충만한 이날에 황기 이천육백년의 기원절을 마지하는 것은 대화민족 전체의 감격과 녹행이 무상한 바이다”, “때마침 지나 사변으로 인한 흥아의 성업이 달성되려는 도중에서 이날을 맛는 것은 신무천황께옵서 망국홍유로 승시하옵신 육합일도, 팔굉일우의 대이상이 동아천지에 완전 실현할 촌보전사로 이것을 상기할 때에 이 황기 이천육백년의 기원절은 과연 감격과 환희의 경절이다”, “대화민족은 신무천황께옵서… 국란이 잇슬때마다 그 위대한 위력을 발휘하여 그것을 타개극복 하여왓다. … 이 일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황기 이천육백년 기원절을 봉축하는 동시에 이 국민적 자각과 기대를 굿게 하여야 할 것이다” 운운하며 일본 왕실을 찬양하고,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에 조선민중이 적극 협력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조선일보는 폐간 4개월 전인 1940년 4월 30일에도 일왕의 생일을 맞아 “황공하옵게도 천황 폐하께옵서는 이날에 제39회 어탄신을 맞이하옵시사……신자(臣子)의 충심으로 흥아성업도 황위하에 일단은 진척을 보아 선린의 새 지나 국민정부가 환도의 경축을 하는 이때에 이 아름다운 탄신을 맞이한 것은 더욱 광휘 있고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라고 보도하며, 그 때까지 ‘신민(臣民)’이라 표현했던 조선민중을 더 나아가 ‘신자(臣子)’라고 지칭, 일거에 일왕의 자식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일보의 위와 같은 보도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최정점이자 상징인 일본 국왕과 왕실을 찬양, 미화하고 일제의 시책에 적극 협력하는 것으로써 일제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는 악질적인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이다.
(2)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조선 민중들을 적극 동원한 보도
조선일보는 일제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대륙을 침략하자,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현하고, 침략 전쟁의 수행을 위해 조선을 후방 병참기지로, 조선 민중은 일제 침략전쟁의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도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7년 8월 2일 사설, 에서 “제국신민으로서 응분의 의무와 성의를 다하고자 시국대책을 강구 실시하고 있는 중 조선군사후원연맹은 그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황군의 사기를 고무 격려하는 것이 이 후원연맹의 중요 임무……요는 국민 각 개인은 각자 힘자라는 데까지를 목표로 하고 응분의 성의를 다하는데 있을 것이다. 있는 이는 있는 이대로 기만원을 내는 것도 총후의 임무요, 출정 장병을 향하여 위로 고무 격려의 편지 한 장 보내는 것도 총후의 임무일 것이다”라고 보도하여 조선 민중들로 하여금 일제의 침략 전쟁을 후원토록 보도하였다.
조선일보는 1937년 8월 12일 사고(社告)를 통하여 조선일보사와 사원들이 솔선해서 헌금한 사실을 밝히면서 “북지사변(중일전쟁) 발발 이래 민간의 국방헌금과 군대위문금은 날로 답지하는 형편인데, 본사에서는 일반 유지의 편의를 위하여 이를 접수 전달하려 하오니 강호 유지는 많이 분발하심을 바랍니다”라고 보도하면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조선 민중을 동원하는 보도나 사설에 그치지 아니하고 스스로 친일행위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1937년 12월 12일 보도에서 “황군의 신속한 행동으로 단번에 지나 수도 남경을 무찌르게 되었다는 전선 뉴스가 보도된 지 불과 수일에 이제 최후의 공성으로 단발마적 저항을 계속하던 남경성도 10일 밤으로 완전 함락을 보게 되었다.……그래서 남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전국적으로 국민환호의 대상이 되어 그 동안 총독부에서 각 도에 미리부터 전달한 바에 의하여 준비가 진행되어 있던 ‘남경함락축하제’는 이제 전 조선적으로 집행하게 되어 명 12일에 일제히 경성을 비롯한 전 조선 각 주요 도시와 군·면·촌을 통하여 남경함락 전승축하 행사로 학생생도들의 기행렬, 제등행렬, 봉고제 등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보도하여 약 30만 명을 학살하여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사로 기록된 일제의 난징 점령 및 난징 학살을 찬양·미화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8년 1월 1일 조간에 는 제목의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의 기고문을 게재, 일제의 침략전쟁에 조선 민중을 내모는 데 협조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또한 1938년 1월 1일 신년호 기이(其二)에서는 !이란 기사를 게재,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민중을 더욱 억압·착취·수탈의 길로 총동원하려는 일제의 시책에 적극 협력하는 보도를 하였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전쟁의 목적은 승리에 잇다. 전쟁을 시작한 이상 승리하지 안흐면 안된다”, “전시체제의 편성이라 함은 이 국가적 정력 즉 그 국민이 갓고잇는 모든 를 가장 유효하게 발동할수 잇도록 편성한다는 말이다... 이 중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야는 무엇보다도 먼저 통일적 정치의식이 필요하고 이 통일적 정치의식에 따라서 즉각으로 실행할 수 잇는 모든 기구가 조직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국민의 전 기구가 중앙집권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직면한 난국의 대책으로 신속한 정책적 단안을 필요로 하는 전시에 잇서서는 대과가 업는 한 정책의 신속결정이 절대로 필요하니만치 장황한 이론투쟁은 금물이다”라고 말하여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해 전 사회를 병영과도 같은 전체주의 체제로 재편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보도를 하였다. 또한 “전쟁에 필요한 경제력이란 돈과 물건, 즉 자금과 물자엡 그러므로 자금을 풍부히 하고 물자를 만흥히 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나 전시에는 윤택히 한다든가 풍부히 한다는 것보다도 필요가 적은 곳에 금전과 물자를 소비치 안토록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라면서 “정부당국에서도 ‘본격적 전쟁은 이제로부터’라고 계고하엿슬 뿐 아니라 내외 정세에 심상치 안흔 점이 만흐니만치 신년이 되드래도 초비상시대처책은 거의 강화될 것이므로 일반 민중은 전시체제하의 정치적 군사적 행정적 동향을 정확히 인식하고 차에 수응할 준비와 각오가 잇서야 할 것이다”라고 보도,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 민중의 호응과 내핍을 요구하였다.
조선일보는 1938년 6월 15일 육군지원병훈련소 개소를 맞아 사설과 1면 머릿기사로, 일제가 1938년 4월경 조선 청년을 일제 침략 전쟁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하여 만든 ‘육군특별지원병제’에 대하여 “……조선통치사의 한 신기원을 이룩한 것……미나미 총독의 일대 영단 정책하에 조선에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실시된 것에 대하여 이미 본 란에 수차 우리의 찬의를 표한 바가 있거니와……황국신민화된 사람으로 그 누가 감격치 아니하며 그 누가 감사치 아니하랴……장래 국가의 간성으로 황국에 대하여 갈충진성(竭忠盡誠)을 다할 것……그래서 국방상 완전히 신민의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보도하였다.
조선일보는 중국 침략 한 돌을 맞은 1938년 7월 7일 사설, 머릿기사 등 전 지면에서 “열철일타의 일본혼이 총후국민의 위력과 같이 동아의 신질서 건설의 발단을 만든 국민 감격의 기념일인 7월 7일을 맞이하여 전 조선의 도시 농산 어촌에 들끓는 총후 황국신민의……물적 심적 총동원의 체제는 귀한 호국의 영령에 바치는 조의와 출정 장병의 신고를 생각게 하는 뜻깊은 여러 가지 행사”라고 보도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 미화하는 보도를 하였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제국은 만주국이 건설된 이래 장차 일만지(日滿支) 삼국의 공존 기책을 위하야 장정권에 제안한바 잇섯건만 장정권은 소허도 제국의 진의를 이해치 못하고 도리어 적대하야 오매 동아의 평화를 위하야 소련의 적화침략을 배제키 위하야 제국의 황도 이상을 달성시키기 위하야 장정권을 그대로 둘수업게 된터인즉 금번 사변에 잇서 제국의 태도는 실로 부득이한 일이다”라며 일제의 중국 침략을 ‘동아의 평화와 소련의 적화침략을 막고 일본의 황도 이상을 달성시키기 위한 것’으로 미화하고, 중일전쟁의 발발 책임을 중국 정부에 돌리는 주장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금번의 지나사변은 제국에 잇서 파괴가 아니요 건설이라는 것이다. 파괴는 단기로써 가능할른지 모르지만은 건설은 결코 단기로써 가능할 것이 아닌만큼 우리는 금번 사변이 장기로 끌 것을 각오하는 동시 그 장기건설을 달성하기에까지 꾸준한 인내력을 요하게 된다”라며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인한 야만적인 파괴·학살 행위를 ‘건설’로 미화하면서 조선 민중에게 침략전쟁 수행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꾸준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8년 11월 4일 석간에서 이란 사설을 통해 일제의 중국침략을 미화하고 조선민중의 적극 동참을 요구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이상으로써 분명한 바와 가티 제국의 차거는 지나의 영토적 점령에 잇거나 약자 압박에 잇는 것이 아니라 용공항일을 일삼아 일만지(日滿支) 협력을 거부하는 국민정부의 마원에 잇다”라면서 중일전쟁 발발의 책임을 중국정부에 돌렸다. 뿐만 아니라 “그러므로 국민정부의 수뇌부로 하야금 종래의 인식을 달리하게 하고 열국으로 하야금 그 무모를 늣기게 하는 것이 제국의 외교적 수완에 잇거니와 그리하야 실력을 배위으로 한 군사적 행동을… 타방정치가, 외교가 내지 국민 전부가 외교가가 되어 그들로 하야금 그 미몽을 깨치게 하지 안흐면 안된다. 이 동아 신질서를 건설하랴는 제국성명의 요령이다” 라면서 조선 민중 전부가 소위 ‘동아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한 일제의 중국 침략을 돕기 위한 ‘외교관’ 노릇을 해야 한다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9년 1월 5일 신년호 기십이(其十二)에서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제의 침략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 민중의 내핍 생활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이번의 제국의회에 제출하려는 대장성의 증세안에는 법인이나 개인을 통하야 여태까지 시행하여오든 그 세액보다 이할 내지 삼할 정도의 증세를 하기로 꾸며잇다. 때가 전시인지라 국민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잇는 데까지 참아가야 하겟고 또한 부과하는 세금도 또박또박 무러야 할 일이나 각종 물건갑시 작구 비싸서 가는 관게로 개인이 부담하는 세액은 이중으로 무겁게 될 것을 잘 인식하야 생활 정도를 종래보다 훨씬 나추어야만 장기전에 견디여 갈 수 잇게 될 터이다”라며 조선민중의 내핍생활을 종용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9년 3월 10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에서 “성전 목적을 달성하기까지에는 아직도 허다한 파란곡절이 만흘거이고 보매 국민일반은 거국일치만이 승리를 좌우한다는 생생한 교훈을 주는 이 기념일을 계기로 더욱 혼연일치가 되어 성전기념목적달성에 매진치 안흐면 안될것이다”라면서 조선민중이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거국일캄, ‘혼연일캄 할 것을 주장하였고 1939년 7월 7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에서도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결코 간과를 거두지 안흘 결심을 한 우리로서는 과거 이년동안의 혁혁한 전과에 … 동시에 국가 총력발휘와 국민정신 앙양에 협력하여 상하군민일치, 과업달성에 매진하여야 한다. 총후 국민은 모름지기 이 기념일을 다가치 과거를 감사하고 동아신질서 건설에 대한 불퇴전 결의를 새로히 함으로써 광의깁게 마지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언명, 조선민중이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 협력에 적극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940년 3월 10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에서도 조선일보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제국은 단호히 기하여 로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반대하여 로서아에 선전을 포고하엿스니 이것이 곳 일로전쟁이다... 삼월 십일 봉천대회전에서 최후적 승리를 전하여 로군을 극동으로부터 완전히 구축하고 전동양을 백인의 마수로부터 해방케하엿다”라고 기술, ‘러시아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동양을 해방한 전쟁’이라 미화하는 보도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황군의 사명은 일층 중대하고 육군기념일의 의미는 일층 깁다. 즉 금차 사변의 성불성은 황국흥폐 될뿐 아니라 동양의 성애 이에 말혓나니 이 사변이 완전 처리되는 날엔 황군의 광휘는 더욱 뚜렷하고 제국의 지위는 그야말로 만대에 진개할 것이다. 성전 사년에 사백여주 황군의 지휘하에 잇고 점령지구엔 신정권의 조광이 각각으로 … 동시에 동양에는 동양인의 동양이 건설될날이 가까온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의의기픈 육군기념일에 제회하여 동아신질서의 건설이 앙양 진행될 것을 확신하는 동시에 광휘잇는 황군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라고 기술, ‘동양을 지배하려는 백인을 물리쳐 흥아신질서를 건설하는 황군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원한다’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의 위와 같은 보도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나아가 일제의 침략 전쟁에 조선을 후방 병참기지화하고 조선 민중을 지원자로 만들고 또 조선 청년을 일제의 전쟁 도구로 나설 것을 선동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한 악질적인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이다.
(3)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옹호하는 보도
조선일보는 일제가 항일독립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식민지 악법의 하나로써 수많은 민족해방투사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적극 옹호하는 보도를 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6년 12월 13일 사설을 통하여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은 사회개조를 목적으로 한 사상범을 대상으로 하는 법령인 만큼 사회적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운용을 잘 못하면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사상운동에 도발적 반동 기운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으리라고 사유한다.……”라고 보도하여 이 법령의 사회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나아가 일제에게 ‘운용’을 잘 하여 독립운동의 기운을 조성할 빌미를 만들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등의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의 위와 같은 보도는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적극 찬양, 옹호하고 민족해방투사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으로써 일제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한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행위이다.
(4) 소년조선일보에 드러난 친일 반민족 보도
조선일보는 부록인 를 통하여 나이 어린 조선 어린이에 대해서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보도를 하는 등 일제강점기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한 보도를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9년 5월 28일 소년조선일보 2면에 게재된 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