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자들이 그토록 향수를 느끼는 70년대의 생활수준
이 제 마직막으로 매국노 다카키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유신독재, 인권탄압 등의 만고의역적 박정권의 죄악상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경우를 예로 들겠다. 빨갱이 박정희 정권 말기인 70년대 말 두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우리 집 세 식구가 살았다. 그 작은 방 옆에 손바닥만한 부엌이 있었고, 건너편에 냄새가 풀 풀 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당시 만해도 연탄을 땠는데 윗목은 온기가 가지 않아 겨울이면 걸레가 얼어붙곤 했다. 연탄불에 겨우 물 한바가지 정도 데워 그것으로 세수하고 머리감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때려 한참 말려야 했다. 동네에서 차 가진 사람이라곤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고 같은 학년의 친구 중 열명에 한두 명 꼴로 대학엘 갔는데 그나마 아버지가 은행원이나 고급공무원인 경우에나 가능했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공소에 취직하거나 직업하사관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따끔 9급공무원이나 은행 등에 취직하면 동네에서 부러워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잘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손톱이 빠지도록 벌고 안 먹고 안 쓰고 하여 막내인 나는 형의 희생덕분에 (일찍 취직하여 내 학비를 댐) 70년도에 대학문턱에 가보는 행운을 누렸다. 78년도에 취직하여 받은 초봉이 15만원 이듬해 17만원으로 13%올라 좋아했는데 그 해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소비자물가가 18%였다. 70년대에는 물가가 20% 이상 뛰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TV는 물론 조선, 중앙 등 신문도 외형적인 성장만 강조할 뿐 급격한 물가상승 등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못했다. 아마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물가가 10%만 상승했다면 남노당괴수 박정희 추종자와 조중동이 온갖 선동으로 무능한 대통령으로 뒤집어 씌워 끌어내렸을 것이다.
내 말이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되었다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 통계치를 조사해 보았다. 배신자 박정희 시절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가 6.4대, 1인당 주거 면적이 2.5평, 2년제 전문대를 포함하여 대학 진학자수가 18만명이었다. 그런데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 돌대가리 김영삼을 거쳐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 집권 말인 2003년에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가 204대, 1인당 주거 면적이 6.1평, 2년제 전문대를 포함하여 대학 진학자수가 60만 명이었다.
나는 70년대 초반 군대생활을 했는데 훈련소에서 동초근무를 선 후 새벽 2-3시경 잠자리에 들어서도 너무나 배가고파 뜬 눈으로 잠을 지새운 적이 많았다. 당시 쌀과 보리를 합쳐 1인당 하루 규정량이 732gr이었지만 정작 배식되는 밥은 몹시 적었고 부식이래야 콩나물국에 김치 몇 쪽이었다. 1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 국이 나왔는데 고기는 온데간데없고 비계덩이만 몇 개 떠 있곤 했다. 실무에 가서도 오히려 훈련소 생각이 날 정도로 배가 고팠다. 전방 오지일수록 정도는 더욱 심했다. 요즘 군대에서 배곯는 병사가 있는가? 요즘 우리생활 수준이 어떤가? 물론 요즘 취직이 안 되어 고통을 당하고 아직도 달동네에서 적은 수입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있지만 웬만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차를 2대 이상 가진 집이 많고,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냉난방시설 틀어놓고, 웬만한 가정에는 컴퓨터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식구마다 휴대폰을 차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만약 요즘 소득수준으로 13평짜리 연탄 아파트에 차도 안 굴리고 휴대폰 대신 공중전화를 이용한다면 얼마나 풍족하고 여유로울가?
매국노 다카키 박정희 시절 작은 집에서 살고 차도 안 굴리고 밤낮으로 일만 하고 살았으니 먹고, 입고, 애들 학비 외에는 돈 들어 갈 일이 없었으니 불편만 감수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지금보다 삶이 편했던 것 뿐이지 남노당괴수 박정희 시절이 결코 잘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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