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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 세계적 석학, 김용 세계은행 총재 모친 전옥숙 박사
WKF2012 | 2012.11.21 | 첨부파일 : -


"너는 아직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You have not seen anything yet)."

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언뜻 보기엔 청소년기나 사회에 진출하기 전인 아들에게 주는 충고 같다. 하지만 어머니 말씀을 항상 새겨듣는 아들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세계은행 수장이 된 김용 총재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쌍벽 중 한 곳의 정상에 오른 데다 지천명의 나이인 그에게 이 충고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성리학과 퇴계학을 깊이 연구한 어머니 전옥숙 박사는 아들이 혹시라도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아직도 애정 어린 충고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현대판 맹모를 포럼 기간인 지난 10월 11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이 만났다. 김 원장은 기획예산처 장관을 역임한 뒤 도산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퇴계학에 푹 빠져 있다. 이번 인터뷰는 김병일 원장이 직접 대화를 이끌어갔다. 무려 1시간40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전 박사는 퇴계학 얘기는 술술 하다가도 자식 얘기가 나오면 말을 아꼈다. 자식에 대한 자랑이 그를 키워낸 자기 자랑으로 보일까 한사코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부모는 자식 자랑을 절대 하는 게 아닙니다."


진행=김병일 국학진흥원장


-세계지식포럼에서 김 총재와 전 박사님의 강연을 들어봤는데 공통점이 있더라. 말하는 것보다 수행하는 게 중요하고, 아는 것보다는 진정한 앎에 이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 닿았다. 퇴계학의 가르침이 전 박사를 통해 그대로 김 총재에게 전해지고, 그로 인해 세계에 크게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 퇴계학을 깊이 연구한 분들이 많을 텐데 내가 전문가라고 하자니 쑥스럽다. 사실 내 원래 전공은 주자학이다. 퇴계 선생이 12세기에 이뤄진 주자의 학문을 16세기에 다시 집대성하셨다. 공자, 맹자도 주자에 의해 부각됐으므로 어떻게 보면 공자, 맹자, 주자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퇴계 선생의 겸손함과 학문에 대한 열정은 놀랄 만하다. 26세 어린 고봉 기대승 선생이 논쟁을 청하자 평생 연구하던 보람이 있다고 오히려 기뻐하셨다. 요즘 같으면 26세 어린 후배 교수가 자기 학설에 반대했을 때 어떻게 했을까. 아마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최근 퇴계학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성균관대에선 유학자들이 공부를 넓게 하고 있는데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21세기에 다시 집대성되고 있다. 주자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다른 유학자들 사상도 공부했지만 퇴계 선생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이런 대학자가 한반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유학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퇴계 선생에 대해 공부를 안 할 수 없다.

-탄금석이란 바위가 있는데 퇴계 선생이 앉아서 ’학문의 단절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잇겠다’고 쓴 시가 있다. 선생께서 주자의 학문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한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시였다.

▶그런 시가 있다니 처음 들었다. 나도 배우고 싶다.

-학문을 집대성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정리하고 알려주려 노력한 과정은 현대 한국인들도 본받아야 한다. 26세 어린 학자의 학문적 도전을 기뻐하면서 8년간 토론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인격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학에도 율곡 계통, 주자 계통, 왕양명 계통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는 사상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방법론적으로 나눈 것이다. 그 분류에 얽매이면 학문이라 할 수 없다. 방법론적인 틀을 넘어서야 한다. 일전에 주자께선 훌륭한데 그 사상을 이해하는 사람이 중국에 없다고 말했더니 한 미국 교수가 "퇴계 선생이 이해했다"고 하더라. 퇴계 선생이 선도해서 율곡 선생, 다산 선생도 반응한 것이다. 다른 계통에 선입견을 가져선 안 된다.

-진정으로 알기 위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 진리를 알라는 거지, 편을 가르라는 게 아닌데.

▶맞다.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비석에 쓰라고 유언한 글이 있다. ’산은 높고 물은 끊이지 않고 흐른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진리의 세계는 끝이 없으니 계속해서 연구하고 묻고 대화하라는 뜻이다.

▶그게 퇴계학이자 공맹과 주자의 정신이다.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닦으라는 것이다.

-책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말인가?

▶그렇다.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공부하면 할수록 더 모르는 게 나오니까.





-주자를 공부하고 퇴계학을 공부하시면서 진리 탐구와 겸허한 자세를 실제 삶 속에서 지켜오셨다는 걸 느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영어사전도 1시간씩 재미있게 보곤 한다. 한국의 유학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 매우 희망적이다. 서양철학계에서 동양철학 호응이 대단하다. 학문적으로 폭도 넓고 우수한 분들이 동양철학에 와 있어 희망적이다.

-학문은 마음이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 21세기 문제는 합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가짐이 없어서 그렇다. 좀 더 구체적으로 찾다 보면 퇴계학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나도 찬성한다. 퇴계학과 유학 역할이 왜 중요하냐면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의 집단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종교는 교리를 만든 뒤 그것이 최고 가치가 되므로 인류의 문제는 그 안에서 빛을 잃게 된다. 반면 퇴계학과 유학은 ’honest humanity’에 집중한다. 가톨릭 신부가 쓴 ’honest God’ 개념과 대비되는 것이다. 체제의 성공보다는 개개인이 자신의 인간성을 찾고 그에 감화되는 것에 유학은 중심을 두고 있다. 희망은 유학에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중요한 사상이 될 것이다.

-미국에 가서 퇴계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는 뭔가. 모두가 서양을 배우려 하던 그 시대에 어쩌다 동양 공부를 하게 됐나.

▶나의 할아버지는 기독교 장로였지만 사서삼경을 다 읽고 내게 풀어주셨다. 그때부터 주자학에 반한 것 같다. 내 주임교수가 윌리엄스 교수란 분이었는데 고전 한학자 겸 불교학자였다. 주임교수께 주자학을 해볼까 의논했더니 하라고 하시더라. 주임교수께서 불교, 중국어를 배우라고 해서 그것부터 공부했다. 고전 중국어도 공부하고 현대 중국어도 공부하고. 지도교수님이 그때서야 논문을 써도 되겠다고 하더라. 하하.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동양 철학이 훌륭한데 그 점을 서양 사람들이 모르니 제발 동양 철학에 대해 소개하고 연구하라"고 하시더라. 주자학을 공부해 보니 그 말이 와 닿았다. 주자학을 하게 된 것은 나를 지도해준 교수님들, 위대한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자녀교육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김용 총재가 어머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렇게 살아갔기 때문에 세계은행 수장이라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 한국 부모들을 위해 한 말씀 해달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야 할지는) 아직도 결론이 있는 게 아니라서 계속 찾고 있다.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 수 있는지 찾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여기서 이렇게 배우고, 저 책을 읽으면 저런 점을 배운다. 나는 아직도 학생이고 미달인 사람이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공부하고 배우겠다.

-김 총재가 다트머스 총장이 되면서 아버지에게는 합리성, 어머니에게는 동양의 미덕에 대해 배웠다고 하던데.

▶나는 아이들과 토론을 많이 했다. 들어가서 잔다고 할 때까지 토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저녁 먹을 때마다 토론했더니 아들이 ’이제 학교에서는 토론에선 나를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자랑한 일이 기억난다.

-지금 한국 어머니들에게 그런 점이 필요하다. 자식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아이가 느리게 가면 부모도 속도를 늦춰주고,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퇴계 선생이 고봉 선생과 8년 동안 같이 간 것처럼 말이다.

▶율곡의 어머니가 신사임당이라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퇴계 선생의 어머니가 훌륭하다는 점은 잊고 있다. 퇴계 어머니는 8형제를 기르면서 시를 쓰지도 못했고 공부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퇴계 선생은 자신이 대학자가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어머니가 교육을 많이 받느냐 그런 게 아니다. 어머니도 자식에게 배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성장시키는 것(raise each other)이다.

-김 총재가 피플인사이드와 인터뷰하면서 "한국 젊은이들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라. 인문학을 가까이 하되 아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이건 퇴계 선생이 추구한 바와 부합한다. 학문은 절대 공리공담이나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얘기를 김 총재에게도 해주셨나.

▶사실 그런 얘기를 따로 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냥 예를 들어 베트남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그때그때 사회현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노인들이 ’젊은 아이들은 이래서 틀렸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기성세대는 전쟁을 일으키고 지구를 망친 책임도 있지 않은가. 젊은 세대가 이걸 고쳐야 지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요새 애들은 컴퓨터만 한다고 한탄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젊은이들이 훨씬 낫다. 내 생각엔 인류가 몇천 년 동안 그토록 바라던 세대가 이제야 온 것 같다. 지금 젊은이들이 바로 그 세대다.

(각종 통신기술로) 우리가 젊은이들로부터 배우고 또 가르치는 것이 가능해졌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위기다. 지금 안 바꾸면 지구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지원하고, 이해가 안 되면 (기성세대들이) 오히려 묻고 배워야 한다.

-지구촌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 과거보다 잘살게 됐지만 행복하다는 사람은 줄고 자살률은 상승한다. 이런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나라가 영속 발전하고 그렇지 못하면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지도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은 오히려 젊은 세대에 물어야 한다. 지도층에 줄 만한 충고가 뭔지 젊은이들에게 물어보고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요즘 교육의 답은 전 박사처럼 인격을 중시한 토론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밥상 토론을 할 때 주제는 누가 골랐나.

▶토론이라기보다는 주제가 있는 대화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주제는 대개 사회적 정의 문제나 인종 문제, 낙태 문제 같은 것이었다. 내가 주제를 고르진 않았고, 애들이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방식이었다. 오히려 애들이 주제를 정했다.

-토론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

▶하루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해서 얘기했다. 엄마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데 왜 시위에 나가지 않느냐고 묻더라.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시위에 나가지 않는다고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당시 공부하고 있을 때라서 시간이 없어서 못 나갈 뿐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해줬다. 부모는 정직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한다.

-자녀와 토론할 때 원칙이 있나.

▶남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너의 생각을 말해라’는 식의 분위기는 안 된다. 상호 간 존경에 바탕한 대화가 필요하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식으로 진정한 호기심을 갖고 자녀에게 자꾸 물어봐야 한다.

사실 매일매일 평생 배워도 배워도 모르는 게 더 많은 것이 사람이다. 두 살, 세 살짜리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실하고 진정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있는 척 해서는 곤란하다. 이것이 유학의 자세다.

■ She is…

전옥숙 박사(79)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어머니이기에 앞서 퇴계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유니언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아이오와대에서 남송시대의 유교철학 사상가인 주희(1130~1200)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그리넬대와 UCLA를 포함한 다수의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에 관한 강의를 진행했다. 하버드대 번팅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진행 = 김병일 국학진흥원장 / 정리 = 송성훈 기자 / 우제윤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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