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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모방할 대상은 이젠 더이상 없다. 필요한건 '리더십' 뿐
WKF2012 | 2012.11.21 | 첨부파일 : -



세계 경제 장기 불황의 터널은 지금 완전한 정체상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그리스 자동차는 연료를 모두 소진하고 고장 난 채 서 있지만, 내부 탑승자들은 서로 싸우고만 있는 형국이고, 스페인 자동차 역시 덜컹거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주변 차량의 운전자들도 문제를 풀기 위해 모두 내려 일단 `긴급회의(EU 정상회의)`를 열었지만 `협력해 잘 해결해 보자`는 당위적인 합의 외에는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 그 뒤에 서 있는 미국과 중국 역시 정비에 바쁘다. 그리고 터널의 끝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불황`이나 `퍼펙트 스톰`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들리는 지금, 매일경제 MBA팀은 유로존 위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유럽의 석학을 만났다. 최근 제13회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에릭 버그로프 유럽부흥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버그로프는 한마디 한마디가 매우 신중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수석 경제학자라는 그의 직위 때문이다.

자칫 한마디가 유럽 시장을 교란할 수도 있는 핵심적인 위치에서 일하다 보니 생긴 어법이다. 그는 현재 유럽의 위기에 대해 냉철한 분석을 하면서도 영미권의 다른 학자들보다는 좀 더 유로존 위기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 유럽, 위기에 대응하는 체계가 없었다

`유럽의 위기가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유럽 국가들의 대처는 지지부진하다. 버그로프는 그 이유에 대해 "유럽 전체에 닥치는 금융ㆍ재정위기에 함께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프레임 워크, 즉 체계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의 위기는 단순히 글로벌 금융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이에 대처하는 유럽 국가들의 정책적인 반응에서 새로운 문제가 계속 생겨났다. 재정위기에 대한 충격은 결국 유럽 국가들이 그동안 지니고 있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풀어 설명하면, 유럽의 위기는 위기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유로존`이라는 단일 통화권으로 지역이 통합된 이후에 최초로 다가온 위기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버그로프는 "국가별로 대응정책을 강력하게 펼쳐 나가면서 `유로존 붕괴`를 막겠다는 각국의 정치적 의지가 더 이상의 사태 악화는 막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장ㆍ단기 대책도 함께 내놨다. 먼저 위기에 대한 분석부터 나눠서 해야 한다는 게 버르로프의 지적이다. 그래야 각각 그에 걸맞은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

우선 유럽 국가, 특히 그리스 등 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재정적자 문제와 취약점은 단기적인 문제로 보고 주변국들이 도울 건 돕고 해결을 촉구할 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문제는 유로존 국가가 공동으로 풀어야 한다. 애초의 유럽통합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과정에서 혹시나 실수는 없었는지, 제대로 문제 해결 및 대응 프레임워크가 짜여 있는지, ECB(유럽중앙은행)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을 엄밀히 따져 `영구적인 관점`에서 설계도를 짜야 한다는 뜻이다.

◆ 중국과 미국, 다른 방법이 없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국 경착륙 우려`에 대한 반론도 나왔다. 버그로프는 "사실 중국의 경제성장률 자체가 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며 "그런 성장률이 지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7% 정도에서 성장률이 유지되면서 내부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좀 더 신경 쓰는 게 중국의 과제가 될 것"이라며 "중국 경제가 크게 붕괴하는 일은 없고 서서히 고도성장이 잦아드는 국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역시 유럽과 마찬가지로 장기적 관점에서 회복과 성장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유럽이 `재앙이 닥치는 수준`으로 망가지는 시나리오라면 중국 역시 어렵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버그로프의 분석이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와 관련해서도 버그로프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다른 대안이 없어 결정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양적완화가 분명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고, 미국이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통화량 증가의 부담을 안겨준다는 비판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명 미국에 가장 좋은 정책이 다른 세계에도 가장 좋은 정책은 아니다"며 "미국 FRB의 양적완화에 대한 비판은 분명 이해할 만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위기를 벗어나는 게 그래도 세계 경제 전체의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위기 극복 후 `달라질 세상`에 대비하라

전 세계적인 위기가 계속되는 지금 CEO들은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야 할까. 또 언젠가 위기가 끝난 뒤에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세계는 어떤 것일까. 버그로프는 우선 CEO들이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경제 시스템, 재정ㆍ금융 시스템의 불안함을 현재 모두가 안고 있다"며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투자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투자결정은 조심스럽게 하되 핵심역량에 집중하면서 위기 이후를 대비하라는 뜻이다. 또 제조업체의 경우에는 조직과 비즈니스 모델의 유연성을 키우면서 미래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리더십 문제도 언급됐다.

버그로프는 "(위기 이후에는)은행 시스템이 분명 옛날과 같지 않을 것이고 확실히 많은 규제와 제한이 생겨날 것"이라며 "비즈니스 리더들은 예전처럼 `레버리징`을 통해 신나게 투자하고 저지르기보다는 변화된 금융환경과 경제환경에 맞는 강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위기 이후에는 금융시스템과 경제환경이 기업 입장에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규제를 피해야 하는 조심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상황의 노예`가 되지는 않으면서도 구조적인 변화를 읽고 강하게 `혁신드라이브`를 걸 수 있어야 한다.

버그로프는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모방할 대상이 없다"며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게 정치적ㆍ경제적 리더십이다. `강한 리더십`으로 스스로의 길을 찾아라"고 말했다.

■ He is…

2006년부터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이자 총재 직속 특별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스톡홀름 경제학부 교수 출신이다. 금융 부문의 발전 모형, 기업지배구조, 경제의 구조적 전환 등에 관련한 책을 저술했다. 주로 신흥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문제에 연구를 집중해 왔지만 최근에는 지역 및 국제적 기구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쟁에도 광범위하게 의견을 개진해 왔다. 정부, IMF, 세계은행 등의 기관에 정기적으로 조언을 제공하기도 한다.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소의 비상임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고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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