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씨와 하인즈 워드에게

김영희씨와 하인즈 워드의 방문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합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늦게나마 두 사람에게 사과하고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해본 기억도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방문으로 인해 처음으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역사 내내 당파싸움과 중생모략과 착취와 빈곤과 부정부패와 차별로 얼룩졌습니다. 침략만 수백 번을 당할 정도로 허약했으며 나라까지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적으로나 국민적으로 단 한 번도 반성해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허약한 역사에서의 피해의식과 개인적 열등감을 숨긴 채 곧바로 ‘우수한 민족’, ‘위대한 나라’, ‘동방예의지국’, ‘단일민족’을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날조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한국인이며 한국에서 숨을 쉬고 삽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죄스러워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으며 이대로 참을 수 없습니다. 전체 국민을 상대로 담판이라도 치르고 싶은 심정이며 나는 이런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심정을 피력하겠습니다.


엄마 김영희씨에게

지금 한국은 아들 하인즈 워드를 훌륭하게 키워낸 엄마 김영희보다 아들에 혈안입니다. 솔직히 엄마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도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가난에 대한 멸시와 차별과 두려움과 피해의식과 기피증을 지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인줄 알면서 저질렀기 때문에 과거를 밝히길 싫어합니다. 만일 김영희씨를 크게 부각시키면 과거의 잘못과 국민성의 실상과 치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사죄하고 반성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곧바로 하인즈 워드에 초점을 맞추거나, 우리를 동일시해서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인기몰이하거나, 착각하고 싶어 합니다. 김영희씨도 이미 파악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영희씨는 100%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못 살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만에 찾은 고국이지만 아들의 명성에 가려지는 분위기여서 안타깝습니다. 물론 세상이 그렇기에 당연한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과의 첫 방문이기에 엄마 김영희에게도 상당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국과 동시에 하인즈 워드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시선을 두 분도 충분히 읽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엄마와 함께 한국을 찾은 것은 엄마에게 기쁨과 보람을 선물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김영희씨는 장한 아들을 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인즈 워드는 엄마를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사실과 마음을 잠시도 잊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들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의식적으로 훌륭한 엄마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한국인들의 눈빛과 관심이 자신에게 심하게 치우침도 느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들은 자신이 너무 크게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훌륭한 아들은 엄마와 국민들의 중간에서 이를 잘 소화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방문 목적과 분위기를 모두 ‘엄마의 공’으로 돌리려는 것을 한국인들은 잘 모르고 있으며, 알바도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국민성에 의해서 차별과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들 하인즈 워드에게

국민들은 두 사람을 차별했던 과거는 살며시 덮어버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두 분에게 과거를 사과하거나, 사죄하거나, 반성하거나, 용서를 빌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두 사람을 자랑하거나 내세울 자격이 없으며, 칭찬하거나 당당하게 마주볼 자격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두 사람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미국에서 죽을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은 대충 넘길 일이 아닙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비민주적이고 비인도적이고 배타적이며 원시적인 국민성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세계(민족)관을 우수성으로 착각해서 교과서에 기술해온 후진적인 국민성은 반드시 참회와 반성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두 분이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①한국을 부인하거나, 의미나 관계를 애써서 축소했을 것입니다.
②다시는 한국을 찾지 않거나, 비난했을 것입니다.
③자신의 성공을 입증하려고 보란 듯이 한국을 방문했을 것입니다.
④차별했던 한국인들을 무시하거나 화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명예서울시민이 된 소감을 밝히면서 “한국인임을 한 때 부끄럽게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두 모자에게 사죄도 용서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신이 과거 심정을 밝히면서 흐느꼈으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까지 구하며 감격해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수치스러웠고 죄스러웠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부끄러워했던 사실을 추궁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용서를 구해야 할 쪽은 오히려 우리이며, 두 사람이 우리를 용서해야 합니다.

두 사람에게 정식으로 말해야만 할 것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국에서 살지 못한 이유는 두 분의 잘못이 아니며 우리의 잘못과 책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두 사람을 만남과 동시에 이 말부터 전해야 옳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기어코 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인간도 사회도 역사도 잘못(과거)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과 문제를 숨기기보다 진실과 진심으로 인정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잘못을 진실하게 밝혀서 정리해야만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하면 또 다른 오해와 갈등이 생길 것이며, 그 때는 더 깊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두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무수히 많지만 대신에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만든 인터넷 카페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항상 건강과 여유와 보람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과거를 극복했듯이 앞으로는 한국과의 인연을 통해 모두에게 밝고 좋은 일들로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두 분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들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2006. 04. 07

국민의 한 사람으로 최익주 드림.

인터넷 주소 : http://cafe.daum.net/gugmin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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