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담배를 태우는 일일 것이다. 혹, 담배를 싫어하는 애인이나,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할 때는 화장실을 핑계로 담배를 태우고 오기도 한다. 2시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영화속 주인공이 멋지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멋있게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영화 속 분위기와 같은 것을 느껴보고 싶은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자칫 영화속 흡연 장면이 판단력이 분명하지 않은 청소년에게도 흡연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여러 단체가 영화속 흡연장면에 대해 더 강력한 심의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기도 했다. 청소년 위원회가 한국소비자연맹에 의뢰해 작년 개봉한 한국영화 40편을 조사한 결과, 흡연장면이 총 225회로 1편당 5.6회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3월 1일 밝힌바 있다. 1위는 19장면으로 ‘연애의 목적’이, 2위는 18장면으로 ‘주먹이 운다’가 꼽혔다.

물론 내용과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많은 흡연장면이 나오는 것은 나도 썩 반기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가 캐릭터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전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관객과의 공감을 이루어 내기에는 매체 자체가 가지는 시간적인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에 흡연장면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전달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전달하고, 주인공의 감정상태를 전달하고, 스토리를 전달하기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써의 담배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때론 그 영화! 하면 주인공이 너무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만 생각나는 영화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담배를 피우는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배 피우는 장면이 그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원초적 본능’ 취조실 장면에서 샤론 스톤의 관능적인 담배 시퀀스는 너무나도 유명한 팜므 파탈 여성 캐릭터의 전형이 되었고,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 역을 맡은 니콜 키드먼의 긴 손가락 사이의 담배는 반복적인 일상에 찌든 그녀의 지긋한 삶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담배 피우는 장면을 통해 과거로의 회상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거친 느와르 영화 속에 거친 주인공의 성격을 담배 피우는 장면으로, 방황하는 청춘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은 당연 한 컷의 흡연장면이라는 것은 우리는 공식처럼 알고 있다.

의 샤론스톤(좌)과 의 이영애(우)의 흡연장면.
영화속 흡연장면은 절대로 흡연을 조장하기 위한 장면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담배는 이미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생활속에서 함께 해 온 도구로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고, 불안함을 표현하기도 하며, 그 사람의 습관을 보여주기도 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애용해 왔기 때문에 모두가 담배 하나로 공감하는 분위기와 상황, 감정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 이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영화속에 흡연장면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면 흡연씬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담배제조매매금지법을 두고 본다면, 어떤 측면에서는 영화에서 담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실을 반영하는 문화의 한 장르인 영화가 법을 무시하고 흡연장면을 넣을 수 없을뿐더러 예술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법으로 제조와 매매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담배를 구하거나 만들거나(모조라 하더라도)해서 영화에 등장 시킬 수는 없다는 얘기다. 담배제조매매금지법이 시행되게 되면 예술적 차원에서도 많은 부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담배제조매매금지법이 절대 시행 될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혹시라도 이 법안이 시행되게 된다면, 이제 감독들은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방황하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담배 한 대 피우는 장면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신 “나 답답해.” 라는 대사를 집어넣어야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또 멋있는 흡연장면을 사랑하는 필자는 담배제조매매금지법이 시행될 리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와 같은 일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