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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고 성폭행 당한 경험
작성자이광수 작성일2018-02-20 13:17:32 추천1 조회2339

North Korean Refugee Speaks Out About Being Trafficked And Abused In China
북한 난민 중 한사람이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고 성폭행 당한 경험에 대해 말한다.

When Ji-hyun Park fled North Korea for China, she was forced into marriage, separated from her child and imprisoned in a labor camp. Today, she uses her story to raise awareness of human rights abuses back home.
박지현씨가 북한을 도망나와 중국으로 갔을때, 그녀는 강제로 결혼할 것을 강요받았다. 또한 그녀의 아이와 떨어져서, 노동 수용소에 감금 되었었다. 오늘날, 그녀는 고향에서의 인권 남용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기 위해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In 1998, when North Korea was in the grip of a famine that eventually killed up to 1 million people, Ji-hyun Park’s father told her to take her brother and run. Park, then 30, escaped to neighboring China, today the destination for many North Koreans fleeing the repressive, abusive regime back home. However, she became the victim of trafficking. Forced into marriage, she lived as little more than a slave, under the constant threat of being repatriated to North Korea.
1998년에, 북한이 기아상태에 있을때에, 결국 그 기아로 인해 1백만명이 죽었다. 지현씨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남동생과 함께 도망치라고 말했다. 지현씨는 그때 30살이었고, 근처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은 오늘날 많은 북한주민들이 억압적이고 학대하는 북한 정권을 떠나서 도착하게 되는 목적지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었다. 강제로 결혼할 것을 강요받았고, 강제 북송을 당할 위협에 계속적으로 시달리며, 노예생활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다.

The United Nations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estimated in 2014 that a large percentage of women and girls who enter China unaccompanied end up being trafficked for forced marriage or sex work. Those who are caught by Chinese police are often sent back to North Korea, where they face certain punishment – including torture and arbitrary detention in labor camps. Women have also reported being subjected to forced abortion, infanticide and rape. Even after their release, many can’t find a way to survive in North Korea, so they return to China despite the risks.
북한 인권에 관련된 2014년 UN 위원회 조사서에 의하면, 혼자서 중국에 들어간 사람들의 숫자 중, 많은 비율의 여성과 소녀들이 결국에는 인신매매당하거나 강제결혼을 당하거나, 매춘업으로 팔려 간다고 한다. 중국 경찰에 붙잡힌 여성들은 북한으로 강제송환 당한다고 한다. 거기서는 고문과 노동수용소 임의적 감금등을 포함하는 특정한 처벌에 직면하게 된다. 여성들은 또한 강제 낙태와 영아살해, 그리고 강간을 당한다고 한다. 석방 뒤에도, 많은 이들이 북한에서는 생존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되돌아간다.

Park spoke with Women & Girls Hub about her ordeal, the nightmares that haunt her and the responsibility she feels to share her story.
박지현씨는 ‘여성과 소녀의 허브’에서 그녀의 호된 시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를 계속 쫓아다니고 있는 악몽’과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은 후의 그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Women & Girls Hub: How did you became a victim of human trafficking?
허브: 어떻게 인신 매매의 희생자가 되셨나요?
Ji-hyun Park: In February 1998, I left North Korea for the first time because of the famine. My uncle died of starvation. My father was sick, but there was no medicine available at the hospital. He told me to leave the country with my brother. I left my father dying alone in a cold room, because those were his last wishes.
박지현: 1998년 2월에, 저는 굶주림때문에 북한을 처음으로 떠났습니다. 삼촌은 굶어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병에 걸리셨습니다. 그러나 병원에는 쓸 수 있는 약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제게 동생과 함께 북한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차가운 방에서 쓸쓸히 홀로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버지의 바람이었으니까요.
In China, the broker who was helping us said, “If you want to save your brother you need money, and for money you have to marry a Chinese man.” At first I said, I can’t marry a Chinese man. “If you can’t, we just repatriate you and your brother,” he said. I was so scared. If we were repatriated, my brother would be sent to a prison camp or be executed. So I didn’t have a choice.
중국에서는, 우리를 도와준 브로커가 말했습니다. “만일 니가 남동생을 구하고 싶으면, 너는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돈을 구하려면, 중국인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 처음에 저는 중국인과 결혼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일 니가 결혼할 수 없다면, 우리는 너와 남동생을 강제 북송시키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겁에 질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북송된다면, 내 동생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어지거나, 처형될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One day, five or six people came to look at me. Different ages get different prices – younger women in their 20s got 10,000 yuan ($1,500), but women in their 30s get 5,000–8,000 yuan ($800–1,200). At that time I was 30, so the price I got was not so high. I was sold for 5,000 Chinese yuan ($800). But I couldn’t save my brother. We were separated because the Chinese man didn’t need my brother.
어느날, 5-6명의 사람들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다른 나이대의 여성은 각기 가격이 달라요. 20대의 젊은 여성들은 1만 위엔(1천5백달러)을 받지만, 30대의 여성은 5천 위엔에서 8천 위엔(8백달러-1천2백달러)를 받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30살이었기때문에, 제 가격은 높지 않았어요. 저는 중국돈으로 5천 위엔에 팔렷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동생을 구할 수 없었어요. 남동생과 저는 헤어졌습니다. 그 중국인 남편이 제 동생과 함께 사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Women & Girls Hub: What was life like after you were married off?
허브: 당신이 결혼하고 난 뒤에 삶은 어땠나요?
Park: When North Korean women married Chinese men, we were not family. We were just slaves.
박지현: 북한 여성이 중국인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북한여성들은 가족으로 취급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냥 노예입니다.
When I arrived at the village, I was so surprised. [The house] was very dirty, the toilet was collapsed and the smell came into the house. It was very difficult for me.
제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때에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 집은 굉장히 더러웠어요. 화장실은 무너져 내렸고, 그 화장실 냄새가 집안으로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때 상황은 저에게 매우 힘들었어요.
Women & Girls Hub: What happened to you in China? How long were you there?
허브: 중국에서는 무슨일이 있었나요? 거기서는 얼마나 오래살았죠?
Park: I lived there for almost six years. My son was born in 1999. After two years, I was arrested by the police of the village. They sometimes arrested North Korean women because they needed money. But my Chinese family didn’t have money. So the police said, “You can sell your son because many people want a son.” I was shocked. My husband wanted to sell my son. I really hated him. I wanted to leave him. But when I went back to ask the broker for help, he told me, “You have no identity card, so you can’t rent a house and you can’t leave your husband.”
저는 거기서 거의 6년 동안 살았습니다. 저의 아들이 1999년에 태어났구요. 그로부터 2년 뒤에 저는 마을에 있는 중국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때때로 북한 여성을 체포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의 중국인 가족은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 중국경찰은 “많은 사람들은 아들을 원하니까, 니 아들이라도 팔아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충격받았습니다. 저의 남편은 저의 아들을 팔고 싶어했어요. 저는 그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저는 그를 떠나고 싶어졌어요. 그러나 제가 브로커에게 다시 도움을 청하러 갔을 때에는, 그가 “너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그러니 방을 빌릴 수도 없고, 너의 중국인 남편을 떠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In 2004, I was arrested and repatriated to North Korea. My son was left in China. I spent six months in a North Korean labor camp, and my leg was hurt [due to gangrene]. The police said I couldn’t survive with that leg, so they released me. I found myself homeless and helpless, begging on the street and seeking refuge at an orphanage for street children. A herbal doctor saw me on the street and started to secretly treat my leg and eventually the gangrene healed.
2004년도에, 저는 체포되었고,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저의 아들은 중국에 남아있었고. 저는 북한 노동 수용소에서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의 다리는 아팠어요. 괴저壞疽증이었습니다. 경찰은 제가 그 다리를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를 석방시켜줬습니다. 저는 제가 집이 없고 도움을 받을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길에서 구걸하면서, ‘거리의 아이들을 수용하는 고아원’에서 쉴 곳을 청했습니다. 제가 길에 있을때에 어떤 한의사가 저를 보더니, 몰래 제 다리를 치료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괴저증은 나았어요.

My son was in China, so I eventually found another broker. We walked 400km [250 miles] across the mountains. My leg was not fully recovered, but I thought only about my son. We arrived late at night at the house. The broker helped me contact my son. I was so lucky; this time the broker was very kind.
저의 아들은 중국에 있었고, 그래서 저는 마침내 다른 브로커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산을 넘어서 40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저의 다리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저는 오로지 제 아들만 (머릿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집에 밤늦은 시각에 도착했습니다. 그 브로커는 제 아들을 볼 수 있게 도와줬어요.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브로커가 매우 친절했습니다.

Women & Girls Hub: Was your plan to try to make a life in China?
허브: 당신의 계획은 중국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었나요?
Park: I couldn’t stay in China. I could have been repatriated again and maybe this time I would never see my son. We wanted to go to South Korea, so we went to the embassy in Beijing, but they didn’t help us. In 2007, we went to Mongolia, but this was not successful. In 2008 [it was] a dangerous time before the Beijing Olympics; China was repatriating all illegals. I was very scared, but I met a Korean-American pastor who helped us.
박지현: 저는 중국에서 계속 머물수가 없었어요. 저는 다시 북한으로 송환될 수도 있었고, 아마도 이번에 또 송환되면 제 아들을 영영 볼 수가 없게 될 거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남한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베이징에 있는 대사관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2007년에는 우리는 몽골에 갔습니다. 그러나 이건 성공적이지 않았어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에는 시기적으로 위험 했습니다: 중국정부는 모든 불법체류자들을 강제 송환시키고 있었거든요. 저는 매우 겁에 질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를 도와 줄 한국계-미국인 목사를 만났어요.

Women & Girls Hub: You eventually ended up in the U.K. How is the trauma you went through still affecting you?
허브: 당신은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일에 대한 트라우마는 어떤가요? 여전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칩니까?
Park: In my dreams, I see the cold room where my father took his last breath as I left North Korea. I also see my younger sibling, who was repatriated back to North Korea. I dream of being chased by Chinese authorities, of being repatriated and sent to forced labor. After these terrible dreams, my body is sweaty and I am filled with guilt, of not being able to stay with my father for his passing, and for my brother. These dreams I have every night.
박지현: 제 꿈에서, 저는 제가 떠나면서 본 ‘아버지가 차가운 방에서 임종전 마지막 숨을 쉬는 모습’을 봅니다. 또한 저는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었던 제 동생을 봅니다. 저는 중국 당국에 의해 제가 쫓기는 장면도 꿈에 봅니다. 제가 강제 송환되고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지는 것도 꿈에 봅니다. 이런 끔찍한 꿈들을 꾸고 나면, 제 몸은 땀에 흠뻑 젖고, 저는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실때에 자리를 지켜드리지 못한 것과 제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요. 저는 매일밤 이런 것들을 꿈에 봅니다.

Women & Girls Hub: Did you receive counseling or help to cope with what you had gone through?
허브: 당신은 당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악몽을) 이겨내기 위해 카운슬링이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Park: No one helped us. I still have problems with nightmares and my leg. When I went to the hospital in the U.K. about my injured leg and explained what happened, they could not understand. North Korean women suffer from many different health problems.
박지현: 아무도 저희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다리 괴저증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영국에 있는 병원에 갔을 때에, 저에게 일어난 일들과 아픈 다리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는데, 그들은 (무슨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북한 여성들은 많은 다른 건강상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At first, I didn’t speak about my experience. Then I was part of a short documentary, but I hid my name and face. But then my son said, “Mommy, I want to ask you one question. Why did you abandon me?” When I was arrested and repatriated, he was five years old. The Chinese told him I had abandoned him. He said he counted to 100 days, but I didn’t come back. I didn’t know this.
처음에는, 저는 저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런 다음, 저는 짧은 다큐멘터리 프로의 일부가 되었었죠. 그러나 저는 여전히 제 이름과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엄마, 질문 하나만 할께. 그때 왜 나를 버렸어?”라고 제 아들이 말하더군요. 제가 체포되어서 강제 송환당했을때, 제 아들은 다섯살 이었습니다. 그 중국인 식구들이 제 아들에게는, 제가 그 아이를 버리고 갔다고 말했답니다. 제 아들이 말했습니다. 100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제가 돌아오지 않았다구요. 저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Women & Girls Hub: But you are telling your story now…
허브: 하지만 당신은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Park: I’ve changed my mind about speaking out: I am now telling the world about North Korean human rights issues, especially for North Korean women.
박지현: 저는 제 마음을 바꿔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저는 온세상에 북한의 인권 이슈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여성들의 인권에 관해서요.

Many North Korean women don’t talk about their human trafficking experience because they think it is very shameful. Some make new families in South Korea or in the U.K. They can’t share their past.
많은 북한 여성들이 그들의 인신매매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몇몇 사람은 남한에서 혹은 영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과거를 공유할 수가 없습니다.

Many North Korean refugees live in the U.K. but have language problems, so I am helping with language courses and refugee issues. Myself, I am still learning about human rights. We didn’t know anything about rights in North Korea. As I was a teacher in North Korea, my dream is to teach again. Last week, I enrolled on a teaching course. I’ve found my freedom and happiness in the U.K.
많은 북한 탈북자들이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어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들을) 언어 수업과 난민 이슈로 돕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아직 인권에 관해 배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서는 권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에는 직업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제 꿈은 다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지난주에, 저는 교육 과정에 등록하였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았습니다.